본문 바로가기
Humanizing/Erich Fromm

necessities to mastering art of living

by 앎의나무 2006. 9. 7.

현대인은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삶의 기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것들이 현대사회에서는 구성되기가 어렵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훈련, 특히 이는 전 생애를 통한 훈련일텐데, 이것을 하기 어렵다. - 현대인의 게으름은 주로 규격화에 대한 반발이다. 그의 반항은 유아적 자기방종의 형태를 취한다. 덧붙여서 권위주의에 맞서는 싸움에서 현대인은 모든 훈련을 스스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이 없으면, 생활은 파괴되고 혼란을 일으키고 중심을 잃게 된다.

<훈련은 자신의 의지의표현이 되어야 한다. 훈련을 즐겁게 생각해야 한다. 비록 처음에는 약간의 저항을 극복해야 하더라도, 역시 즐거운 것이 아닐 수 없음을 깨닫자>

정신집중은 우리 문화에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떠들고 담배 피우고 읽고 마시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짜증을 내고 조바심을 하며 입으로든 손으로든 무슨 일을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독서, 청취, 흡연, 음주 등을 하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상을 하며 잡념을 제거하고 호흡을 느끼고나아가 '나', 곧 나의힘의 중심으로서의 나의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나- 나 자신을 느끼는 훈련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우리는 전념하는 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 순간에 하고 있느느 활동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하고 이일에 몰두해야 한다. 만을 정신집중이 되었다면 지금 '무엇'을하고 있느냐하는 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나, 우리들의 충분한 주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션실성을 갖게 된다.

<정신집중을 배우려면 가능한 한 쓸데없는 대화, 다시 말하면 순수하지 못한 대화를 피해야 한다>

<나쁜 친그를 피해야 한다 : 불가피할 경우그들에 의해 기대되는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인간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정신을 집중시키고 듣는 것이 더욱 피곤해질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어떤 활동이든 정신을 집중시킨 상태에서 행한다면 우리를 더욱 각성시키지만(비록 후에는 자연스럽고 유쾌한 피로감이 생기지만) 정신이 집중되지 않는 모든 활동은 우리를 졸립게 만들고, 그날 밤 잠들기 어렵게 만든다.>

<정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 "여기", "지금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에게 민감해지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가장 바람직한 정신적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사회집단의 정신적 기능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다르지 않는 한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일에는 흥미를 갖지 못한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는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

<자기 자신에 민감하지 못하면 정신집중도 배우지 못한다. 그의 정신은 긴장을 푼 경계상태에 있고 그의 정신은 집중되어 있는 상황과 관련된 모든 타당한 변화에 대해서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불안하거나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애가 보내는 의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빈틈없는 균형상태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민감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알고 여기에 말려드는 대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나는 우울한가?"고 묻는다>

<조바심이 난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백일몽에 잠긴다든가, 그밖의 도피적 행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이러한 상황을 합리화하는 무수한 방법이 있더라도 결코 합리화하지 않는 것이다.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는 왜 내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조바심하는 가를 말해 줄 것이다.>

인내는 현대인들에게 훈련과 정신집중과 마찬가지로 어렵다. - 우리의 사회와 문화는 모두 신속성을 촉구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경제적 이유가 있다.다른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런 것처럼 인간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기계에 대해 좋은 것은 인간에 대해서도 좋은 것이어야 한다 : 논리는 이렇게 계속된다. 현대인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할 때에는 무엇인가, 곧 시간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해서 얻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알지 못한다 - 시간을 허비하는 것 이외에는.

<만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라도 그 일을 하려고한다면 사실상 우리는 결코 정신집중도, 기술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인내가 어떤 것인지 알려면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애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어린애는 계속 시도하며 조금씩 고쳐나가서 결국 걷는다>

최고의 관심! 자신의 발견이 최고로 중요한 것이라는 의식의 결여.

'Humanizing > Erich Fromm'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어 있기  (0) 2006.10.28
왜곡 없는 시각을 위해  (0) 2006.10.28
자유와 민주주의 (에리히 프롬)  (0) 2006.07.21
잊어버린 언어 #7  (0) 2006.07.21
잊어버린 언어 #6  (0) 200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