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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zing

[펌] 3S... 소비대중... 민주정치, 이영자

by 앎의나무 2005. 12. 2.
3S…소비대중…민주정치
세상읽기
▲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1980년대 한국에서는 ‘3에스’(3S·섹스, 스크린, 스포츠)가 독재정권에 순응하는 비정치적 대중을 양산하는 우민화 정책에 이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오늘 3에스는 정보기술의 확산과 소비시장의 세계화에 따라 국가적 경쟁력, 최고의 상품성, 대중의 인기, 성공적 커리어 등을 상징하는 대명사들로 부상하고 있다. 잘나가는 운동선수, 연예인, 섹스산업 종사자의 몸값은 일반 봉급생활자들의 노동 가치를 무참하게 비웃는 수준이다. 3에스가 소비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자리잡게 된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3에스에 부과되었던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연상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는 단연 3에스가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사회를 예찬하고 있다.

그렇다면 군사독재의 터널을 빠져나온 오늘의 한국정치는 3에스와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3에스의 상품성에 매료되는 오늘의 대중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3에스를 무기로 비정치적 다수가 되도록 종용받던 대중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민주주의가 다수에 의한 정치라고 할 때, 오늘의 다수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력을 키우는 소비대중을 의미한다. 소비자본주의가 다수 대중의 취향을 정치현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할수록, 정치는 소비대중의 취향을 따라잡기에 바쁘다. 정치는 3에스를 닮아가는 한판 승부게임으로, 선정주의로, 이미지 공략으로, 또는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축제나 퍼포먼스나 광고상품으로 연출되면서 재미와 감각으로 포장된다. 정치선전 비용이 늘어나고 미디어 정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금권정치가 판을 치게 되는데, 이러한 금권정치는 정치가 미발전한 전 근대적 유물이기보다는 소비대중 다수에게 어필하기 위한 민주정치의 애처로운 변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본주의의 문화산업자본과 문화권력이 민주정치를 그 아류로 흡수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 것을 말한다. 헤게모니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정의대로 ‘도덕적·지적 지도력’을 뜻하는 것이라면, 오늘에 와서 민주정치는 헤게모니 경쟁에서 소비자본주의에게 그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에 있다. 소비자본주의는 소위 다중적 정체성, 다양성, 저항과 전복의 쾌락, 욕망의 자유로운 표출 등을 통해 소비대중의 수동적 순응을 넘어 ‘자발적 동조’를 이끌어냄으로써 헤게모니를 장악한다. 20여년 전 한국에서 3에스가 독재정권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면, 오늘에 와서 3에스는 소비대중의 자발적 동조에 힘입어 소비자본주의의 헤게모니 구축에 적극 기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민주정치는 바로 그 헤게모니에 편승, 예속되는 상황에 처한다. 작금에 우리 사회에서 태연스럽게 회자되는 ‘탈이념 정치론’이나 ‘정치스타 만들기’는 그 대표적인 경우로, 정치적 주체로서 다수보다는 소비대중의 다수에게 어필하기 위한 정치전술을 정당화하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정치가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독자적인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는가의 근본 문제가 제기된다. 참여민주주의가 강조되는 이 시대에 그 참여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다수가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소비자본주의 헤게모니에 적극 동조하는 소비대중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다고 할 때, 민주정치의 미래는 그 심연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해결에 달려 있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영자/가톨릭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