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선 많은 것이 잃어지며, 다른 한쪽에선 많은 것이 얻어지는 것.
언어의 변화의 한 특징을 기술하자면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변화 가운데 가장 극적인 것을 들자면 주저않고 문법화를 들겠다. 이 문법화는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과정인 동시에 많은 것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문법화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갖던 단어가 점차 그 실제적 의미가 줄어들어서 추상화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단순히 실제적 의미를 잃는다고 모두 문법화라고는 하지 않는다.
受苦(수고)라는 단어의 뜻이 불교에서 쓰이던 수행의 방법 가운데 하나에서 일반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의미로 변한 것은 의미내용이 축소가 되었지만 문법화는 아니다.
혹자는 이것이 왜 의미내용의 축소냐고 물어볼 것이다. 가령 사람과남자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의미내용이 많은가 자문해보면 의문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남자는 사람이라는 의미내용을 모두 갖고 거기에다가 [수컷]이라는 의미내용이 더 있어야 한다. 즉 의미내용이 많을수록 더 구체적인 것을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문법화하는 단어는 실제적인 의미는 점차 잃어가는 대신에 관계적인 기능을 얻어가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가령, '하고'라는 단어는 원래는 '무엇인가 행동한다는 것'의 의미이지만 그런 의미가 약해져 '~와 함께'라는 접속의 기능을 하게 된다. "너하고 나"는 "You and Me"의 의미로 'do'의 의미는 없다. 곰곰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서 문법화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좋잖아"도 지금은 "좋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좋지 않아"의 준말로 문법화 하면서 부정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도 하루하루 지내며 생명을 하루씩 잃어하지만,
그만큼 추억을, 관계를, 사랑을 쌓아간다.
인간과 언어는 닮아 있기에, 언어학은 인문학이 되고, 언어를 통해 인간정신의 본체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언어라는 건 모두 인간 정신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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