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걸 알면서 정작 일을 하는 동안엔 거기에서 벗어나고픈 유혹에 시달린다.
수렵사회나 어로사회 시절에는, 누구나 비슷한 성숙의 길을 밟았다. 크면 무엇을 해야하나라는 물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고, 어른이 되어 할 수 잇는 생산 활동의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농업혁명과, 도시 혁명, 산업 혁명을 거쳐 지금은 사정이 확 달라졌다.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전문 직종에 대해 터무니없이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이 장래 직업에 대해 현실감각이 없는 것은, 의미 있는 직업 선택의 기회라든가 보고 배울 만한 직업인을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필요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과, 쓸모 없지만 즐거운 일을 확연히 구분할 줄 안다. 직장에서도 똑같은 체험을 한다. (일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사회 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굳어져버린다.) 그중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일 같지도 않고 놀이 같지도 않은 걸 할 때이다. 어린 시절의 태도는 나중에 커서 일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두고두고 큰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으로 남자의 정체성과 자부심은 자신과 가족이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주위에서어떻게 구해 오느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반대로 여자의 자긍심은 전통적으로 자식을 키우고 가족에게 쾌적한 물질적 정서적 환경을 제공하는 데서 나왔다. 직업 여성이 많은 현대에도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목표 의식과 도전 의식이 없이는, 의미 잇는 삶을 누리기에 충분할 만큼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기가 어렵다.
을은 산만함을 누르고 집중력을 살린다. 이상적인 경우는 일의 난이도가 일을 하는 사람의 실력과 엇비슷할 때다. 몰입 경험과 보상이 따른다. 집에서 혼자 있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는 명확한 목표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따분해지게 마련이고 때론 불안마저 느낀다.
그런데도 기회만 있으면 일을 줄이려고 한다. 왜 그럴까? 일의 객관적 조건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자유 시간이 많아지면 저절로행복해 질 것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아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은, 사냥을 하던 선조들처럼 일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삶과 일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가 기다리던 금요일이 왔구나, 금요일이 되면 이틀 동안 방해받지 않고 꼬박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이들은 일벌레가 아니다. 가정과 자기계발에도 열심히다.
일에 전념하면서도 인생을 다채롭게 꾸려간 예는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일을 어떻게 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서어떤 경험을 끌어낼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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