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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

쓰기-발화, 문어-구어

by 앎의나무 2007. 3. 14.

한국어 구어 문법, 3월 14일 질문지.


Gunther Kress의 Learning to write (2nd ed.) 2장 “Speech and writing”을 읽고

by 쟝

1. 소수의 사람들만이 글쓰기를 향유한다는 주장에 대해

Gunther Kress의 Learning to write(2nd ed.)의 2장(Speech and writing)에 따르면 말하기와 다르게 생산적인 글쓰기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는 행위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typewriter, 비서, 아나운서 이런 사람들은 생산적(productive)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재생산할 뿐이라는 저자의 말은 두 번째 판이 나왔던 1994년까지는 일리가 있다. 새로운 글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이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특히 매체의 발달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강력하다. 가령, 핸드폰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고 우리네 삶의 풍속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다른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 중 시간을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가 가장 크다. 무엇이든 속도는 엄청 빨라졌다. 의사의 전달과 재전달 그리고 확인은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고 어렵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인터넷의 보편화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인터넷의 보편화로 이루어진 특별한 변화 한 가지는 누구라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글을 발행(issue)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블로그, 홈페이지, 미니홈페이지 등을 운영할 수 있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인터넷이라는 새 매체로 인해 '글'은 특정계층만 쓰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따라서, 저자의 두 번째 판이 나온 시점이 1994 년이란 점, 인터넷의 보급률이 한국에 비해 미국이나 유럽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저자의 의견이 이해가 안되는 바도 아니지만, 문어(writing)와 구어(speech)의 구사가 사회 계급에 의해 통제되는 것은 부차적이고, 매체의 발달과 보급에 더욱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누구나 생산적인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인터넷 상에서는 종이책의 글이 옮겨오거나, 하나의 글이 스크랩되고 복사되고 짜집기되는 등의 '재생산'이 양적으로는 압도적이다. 그렇지만 생산적인 글들도 상당하고 아예 사이버상에서만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제공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2. 글로 써진 것은 모두 문어인가. 소리로 발화된 것은 모두 구어인가.

2.1 매체가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이따(가) 보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따(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어간 ‘있-’에 어미 ‘-다(가)’가 결합한 어형이 시간을 지시하는 표현으로 문법화한 단어일 것이다. 이런 표현을 종종 소설 속에서, 인터넷의 게시판이나 방명록 같은 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를 ‘문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업에서 교과서의 설명문을 한 사람이 대표로 또박또박 읽는 것은 ‘구어’라고 할 수 있을까. (보통 ‘구어’라는 표현은 매체는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일상의 언어’를 지시하는 데 쓰이는 것 같다) 이때, 만약 형태(form)는 그대로 두고 그 지역의 독특한 억양만은 살려 읽었다면 그것은 문어인가 구어인가. 원론적인 구분의 문제를 떠나서, 언어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입장에서는 매체가 ‘소리’인지 ‘텍스트’인지에 따라 구어와 문어를 확연하게 구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텍스트 자료라도 연구의 목적에 따라 구어 자료로 다뤄질 수도 있고 문어 자료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라는 표현이 있다. 종종 전문적인 논문들이나, 어떤 현상, 과정을 설명하는 글들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의 담화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럼 이런 표현은 구어와 문어 중 어느 범주에 속하는가.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어떤 글이나 말을 접할 때 좀 더 문어에 가깝다거나 구어에 가깝다거나 하는 판단을 한다.


2.2 문장 구조가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한 통사적인 차이도 얼마나 분명한 기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두 발표문이 논문으로 실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물론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겠지만, 비문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같은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글들이라고 해도 어떤 것은 평이한 어휘의 단문 위주로 되어 있어 술술 읽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것도 있다. 게다가 세미나를 하거나 깊은 관심 사항에 대해 남에게 이야기할 때, 그 당사자들의 말은 통사적으로 매우 복잡한 경우가 빈번하여, ‘어? 뭐라고? 다시 말해줘’라며 되묻곤 한다.


2.3 한 가지 시각 : 문체론에서의 접근

Turner(1973, Stylistics, Register:165~202, Penguin Books.)에서 언급된, 참조할 맥락의 결여, 필자와 독자의 시공간적 단절, 오랜 전달 기간, 전달자가 보아선 안 되는 상황, 생각할 시간적 여유 등이 문어의 탄생 과정에서 문어 문체를 좀 더 투식적이고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은 새길 만한 것 같다. 문어 문체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고려하여 문어가 구어와 대비되게 발달시킨 특성을 살피면, 그런 문어적 특성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얼마나 문어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얼마나 구어적’이냐를 지표로 삼을 수도 있다.

따라서 문어이지만 구어적일 수 있고 구어이지만 문어적일 수 있으며 같은 구어에서도 더 구어적인 것이 있을 수 있고 문어에서도 더 문어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알려진 정보 (known information)

like 와 같은 전치사 등의 기능의미를 담당하는 형태소들은 언제나 알려진 정보인가.



4. 맞춤법 규정과 관련하여

맞춤법이 글쓰기(writing)에 관련된 문제라는 것 그리고 저자가 지적한 발화와 글쓰기의 차이점이 정당한 것이라면, 국어의 현행 한글 맞춤법 규정은 별로 정당한 것 같지 않다. 저자는 발화와 글쓰기의 차이가 주로 담화·통사적 차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현행 맞춤법 규정은 주로 형태·음소적인 문제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한편 담화·통사적인 차이는 규정화되어 준수해야할 조항으로 만들어지기 힘들 것이다. 기껏 금지 조항만을 둘 수 있는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규범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양성하려면, 차라리 규정을 정하기보다 다량의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