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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zing/Erich Fromm

잊어버린 언어 / 에리히 프롬

by 앎의나무 2008. 12. 17.



신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

아마도 학파 같은 것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바도 아니었고, 집단주의를 조장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바라서도 안 된다는 에리히 프롬의 평소 유지 때문이겠지만, 소위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은 요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흔히 꿈의 해석이라면 융이나 프로이트의 저작만을 쉽게 떠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프로이트와 융은 추종자가 많았고, 스스로 자기피알도 많이 했으니까.

하지만 신프로이트학파의 수장이랄 수 있는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만) 에리히 프롬의 저작들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과 무수한 임상실험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어,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진흙 속의 진주랄까.


에리히 프롬, 프로이트와 융이라는 양극단의 Synthesis

인간의 심리적 작용을 성적 에너지와만 관련시켜 설명하려고 했던 프로이트, 그와 정반대로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을 선천적이고 신비한, 신에 의해 주어지는 무엇인가로만 설명하려고 했던 융
.
전자는 지나치게 좁은 시야로 인간을 보았고, 후자는 너무나 쉽게 인간을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수많은 사건들은 인간이 섹스에만 미친 동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류 발전의 역사는 생명력을 꽃피우고, 창조적이고, 사랑을 나누려는 의지를 통해서 이루어져왔다.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이라도 인간은 타고난 합리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을 추구하였으며, 무기력하게 모든 걸 포기하고, 낙담하고 한 존재에게 내 맡겨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융의 입장도 옳지 못하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프롬은 이 두 극단의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복하고 있다. 인간은 성에너지에 좌우되는 조건반사적인 존재가 아니며, 타자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나몰라라 하는 '자기파괴적' 혹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타고나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합리성을 가지고 있으며 줄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발휘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렇게 프롬은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 개인의 내적인 성숙과 사회의 변혁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사회 변혁과 개인의 내면의 성숙은 소위 공진화 관계라는 것이다. 


잊어버린 언어 Forgotten Language

여기서 소개하는 '잊어버린 언어'는 그 중에서 내적인 성숙과 관련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내적인 성숙만으로는 인류의 행복은 결코 달성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으나 여기에선 일단 ...]

꿈은 깨어 있을 때의 정보를 해석하여 내면의 자아가 전해주는 상징의 언어이다.

꿈은 불합리한 욕망의 표출인 경우도 있지만, 자아의 성장과 과련된 경우도 있다. 전자를 흔히 개꿈이라고 할 수 있고, 프로이트의 꿈 해설이 맞는 경우는 대개 이 경우이다. 후자는 융이 예지몽이라고 불렀던 종류를 포함하여, 자아의 성장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을 꿈이 알려주는 경우이다. 

이 후자의 꿈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자아의 성장 좌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프로이트 식의 욕망 표현인 꿈과 융 식의 예지몽이 같은 원리에 의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자신의 꿈과 현재 자아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책이 있는 곳이 흔치 않다.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