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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cetera/Rumor

노벨 화학상과 피셔의 저주

by 앎의나무 2007. 6. 27.
1945년 3월 31일, 한 남자가 자살했다. 그는 얼마 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생화학자였다. 그가 받은 상금도, 그의 명예도 부검실에 놓인 차가운 시체 앞에선 모두 한줌의 꿈에 불과했다. 그의 이름은 한스 피셔.

이로부터 28년 전인 1919년 7월 15일, 한 남자가 자살했다. 그 역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화학자였다. 그의 이름은 에밀 피셔. ‘피셔’(Fischer)라는 이름을 가진 노벨 화학상 수상자 둘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에밀 피셔가 자살하기 10년 전, 그의 옆에는 한스 피셔가 조수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타인이었다. 대체 무엇이 두 명의 피셔를 같은 운명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에밀 피셔는 1852년 10월 9일 프로이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이주한 그는 1881년부터 퓨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퓨린은 DNA의 성분을 만드는 중요한 물질이다. 여러 가지 질소화합물과 퓨린의 관계를 밝혀내고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퓨린을 합성해냈다.

우리가 많이 먹는 동식물에도 퓨린과 유사한 화합물이 많이 포함돼 있다. 특히 많이 들어있는 식품은 육류, 고등어와 멸치같은 등푸른 생선,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콩 등이다. 하지만 퓨린이 너무 많으면 몸에 요산이 쌓여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통풍’에 걸릴 수 있다. 중요한 물질이지만 과다 섭취하면 몸에 안 좋다는 얘기다.

그는 또 포도당과 과당 같은 당을 연구해 당시 알려진 모든 당의 분자구조를 결정했다. 작대기와 원소 기호를 이용해 3차원의 복잡한 분자구조를 2차원으로 표현하는 ‘피셔 투영법’도 그가 만든 것이다. 유기화학 책에 널린 탄소-수소-질소의 연결을 공부하면서 ‘대체 이런 건 누가 만들어낸 거야!’며 머리를 쥐어뜯는 학생들에겐 별로 안 반가운 얘기겠지만, 생화학 분야에서 그의 연구는 환영받았다. 결국 1902년 스웨덴의 노벨상 협회는 당과 퓨린기에 대한 그의 연구를 인정해 노벨 화학상을 수여했다.

노벨상 외에도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했다. 1890년에는 영국 왕립학회에서 메달을 받았고, 1899년에는 왕립학회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됐다. 또한 그가 죽은 1919년에는 독일 화학회에서 에밀 피셔 기념 메달을 만들기도 했다.

에밀 피셔가 연구에 매달릴 때 그의 옆에는 한스 피셔가 있었다. 한스는 1881년 7월 27일 독일 마인강 유역의 회이스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화학과 의학 서적을 즐겨 읽었던 그는 1904년 화학 박사 학위를, 1906년에는 의사 자격증을 딴 수재였다. 1908년 뮌헨대에서 의학박사를 딴 그는 베를린대로 가서 1910년까지 3년간 에밀 피셔의 조수로 일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피셔가 드디어 인연을 맺은 것이다.

1930년 한스는 적혈구 색소인 헤민과 클로로필의 구조를 연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혈액이 붉은 이유는 적혈구에 들어있는 헤모글로빈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 메타헤모글로빈이 된다. 메타헤모글로빈 안에 있는 색소 헤마틴이 산과 결합한 것이 헤민이다.

헤민은 범죄 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CSI 등의 과학수사물을 보면 혈흔을 알아보기 위해 루미놀이라는 액체를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루미놀과 만난 혈액은 파란색 형광빛을 내며 ‘여기 피가 있어요’라고 속삭인다. 이는 루미놀 안에 있는 과산화수소와 헤민의 만남이 빚어낸 현상이다. 과산화수소가 헤민을 건드리면 헤민의 산소가 떨어져나가 루미놀을 산화시킨다. 이 때 루미놀의 남은 전자들이 들뜬 상태가 됐다가 가라앉으며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것이다. 한스가 루미놀 반응까지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헤민에 대한 그의 연구가 없었더라면 CSI는 아직까지 피냄새를 직접 맡으며 돌아다녀야 했을 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다른 대학을 졸업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연구를 한 두 피셔. 그러나 사제관계와 노벨 화학상으로 한 번 맺어진 이들의 인연은 둘 다 자살함으로써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끈질기게 이어졌다.

에밀 피셔는 1차 세계대전 중 두 아들이 전사하고 아내도 세상을 떠나자 자살을 결심했다. 한스 피셔는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받아 연구실이 무너지자 삶의 의지를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두 사람의 연속 자살은 전쟁이 낳은 비극이었던 셈이다. 이로서 두 피셔는 과학자를 위한 명예의 전당과 자살한 위인을 위한 불명예(?)의 전당에 동시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1973년 또 다른 피셔가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금속과 유기물질의 결합 메커니즘을 밝혀낸 공로로 상을 받은 그의 이름은 에른스트 오토 피셔. 그 역시 앞의 두 피셔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피셔의 저주가 한스 대에서 끝났기를, 그래서 아직까지 멀쩡하게 잘 살아있는 오토 피셔가 천수를 다 누리고 명예의 전당에만 그 이름을 올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다. (글: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from kisti 과학향기 620호, 200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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