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에리히 프롬(사진·1900~1980)은 〈소유냐 삶이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등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사상가다. ‘친숙’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저 통속적인 사상가 혹은 교양있는 수필 작가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평전은 프롬이 쓴 19권의 저서를 통해 그의 사상의 기원과 발달과 변화를 실증적으로 추적함으로써 프롬 사상의 본령을 드러내보이는 책이다.
프롬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서 출발해, 거기에 특유의 비판의식으로 인간적 숨결을 불어넣음으로써 더욱 구체적이고 풍부한 실천전략을 제시했다. 독일에서 유대인 부모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른세 살 때 미국으로 망명해 시민권을 얻은 뒤 1950년부터 23년 동안은 멕시코에서 거주했으며, 말년은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보냈다.
지은이는 프롬의 생애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한다. ‘배움’은 프롬이 태어나 대학을 마치기까지 25년이다. ‘모색’은 프롬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만나면서 유대 전통과 시오니즘에서 벗어나 정통 프로이트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로 난(공부한) 10년 동안이다. 이 시기, 프롬은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심리 또는 대중심리의 비합리성을 무시했다고 비판”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사회에 적용한다. 한편으로 그는 “정신분석학은 유물론적 심리학으로서 자연과학의 한 부문으로 분류돼야 한다”며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사상을 통합하는 새로운 사회심리학을 제창했다.
‘성숙’(3~6장)은 프롬 전기의 중요 저작들이 쏟아져 나온 25년 동안으로, 활발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정치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한 시기다. 첨단 자본주의의 명암을 목격하면서 미국에 대한 애증을 동시에 지닌 시기이기도 하다. 〈건전한 사회〉 출간과 함께 한때 미국 사회당-사회민주연합 통합당에 입당했으며, 평화운동과 군비축소에 정열을 쏟았다.
‘전환’(7~9장)은 “생태에 관심을 갖고 아나키즘적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는 등 신선한 자극적 통찰이 빛나는” 시기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의 사상이 다분히 유토피아적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생명애’를 간직하면서 “자유롭고 자치하는 삶을 통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프롬이 우리에게 남겨준 꿈”이자 “우리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결론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