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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cetera/Hurt-Thing Diary

할머니에 대한 추억의 한 도막

by 앎의나무 2018. 3. 1.

어릴적 우리집은 외설악 울산바위 코스 중간에서 기념품 코너를 운영했다.

부모님, 일하는 고모들과 국립공원 안에서 9살까지 살았다.

수학여행 철이 되면 일손이 부족해서 나와 동생을 가끔 할머니께 맡기고는 했는데,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해에는 겸사겸사 할머니가 설악산 집으로 오셨었다.

등교를 위해 매일 공원 초입의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던 내가 할머니 마중을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를 만나 같이 걸어 올라오며 할머니께 관심도 별로 없을 학교와 친구 얘기를 한참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중간 쯤에 돌아가는 길과 질러가는 길이 빤히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면 돌아가도 1분도 지체되지 않을 그런 거리였다.

할머니를 그 길로 이끌며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 이 길이 기름길이야

지름길이 아니고?

아니야, 기름칠 한 것처럼 미끄러워서 빨리 가는 길이니까 기름길이야.

둘러가지 않고 가운데를 질러가는 길이 아니고?

아니야 기!름!길!

그래 알았다.


할머니가 잘 몰라서 '길'을 '질'이라고 발음한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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