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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cetera/Hurt-Thing Diary

죽음과 영원함

by 앎의나무 2009. 6. 28.
죽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갑작스럽게 가는 죽음 말고 어떻게든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 본다.

추락하는 비행기라든지, 낭떨어지에서 떨어지고 있는 순간이라든지 등등의 극단적인 죽음의 방식은 물론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져서 숨쉬기조차 곤란한 그런 상황에서의 죽음까지.

어떤 것이 되었든, 내가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다.

곧, 숨이 끊어지면 (혹은 자유낙하가 끝나는 저 아래 저 바윗돌에 부딛히면, 혹은 숨을 쉴 수 없어 곧 뇌에 더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의식이 사라지면) 
내 몸은 그저 고깃덩이에 불과하게 되겠지
나라는 생명체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겠지
나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는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끼고 맛볼 수 없겠지
나는 다시는 사람들과 정겨운 말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겠지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갈 것이다.

최후의 숨을 내쉬는 순간에 지난 생을 후회하지 않을 삶이란 어떤 것인가
죽음에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임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든 미련을 남길 수밖에 없겠지만
실상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과거의 삶들의 연속 위의 한 씨줄이고 날줄이다.
그런 삶들이 모인 과거가 우리를 짜내고, 우리의 삶이 또 미래를 짜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과거의 삶들에 의해 만들어진 환경에 영향을 받고 어느 정도 근본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내가 그 기반 위에서 행하여온 삶도, 또 후대의 삶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시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져있다. 이미 우리는 미래를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생은 한 번뿐이며 그 한 번이 우리가 어떤 존재로 남는가를 결정한다. 그러한 영원함 속에서 우리가 생명을 받아 사는 순간은 고작 1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100년을 사는 것이 미련이나 후회 없는 영원함으로 남겠는가. 

나의 삶이 내가 사는 모든 시공간 속에서 우리 모두의 향상과 발전을 향해 왔다면, 내 삶이 그 목적을 위해 충실했다면 나는 나의 죽음이 후회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삶이 시작되고 나의 삶을 규정하고 나의 삶이 규정하는 그 면면한 흐름들에 일조하는 삶. 나를 품고 있는 보다 큰 우리를 위할 수 있는 삶.

결국 나와 이어져 있고 나를 품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성장과 연대를 위해, 지구 생명체들의 조화를 위해 살아 왔다면, 나의 삶의 자세가 하나의 파동이 되어 공명하고 울려서 큰 파동이 되고 '우리'의 행복과 발전이라는 과정에 일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죽음을 맞아 미련이 남지 않을 것도 같다. 나는 그 긍정적인 파동이 되어 자연과 우주에 영원히 남을테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잘 살다가 돌려주고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삶의 하나는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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