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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

Nature vs. Nurture, Objectivism vs.Solipsism in Linguistics

by 앎의나무 2010. 8. 3.

언어를 구사하고 이해하는 활동이 인간의 인지적 능력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소위 본성(nature) 양육(nurture)’의 대립 구도를 이루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두 관점이 존재한다(cf. 스티븐 핑커 2004)[각주:1].

본성에 대응하는 관점은,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인간의 인지적 능력이 태생적인 것이며, 다른 능력과 독립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보편 문법(Universal Grammar)을 가지고 태어나며, 처음 접하는 언어에 의해 변항(parameter) 값이 결정되면서 개별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양육에 대응하는 관점은, 언어만을 위한 타고난 인지 기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성장하며 사회적 행동 양식을 익히고, 사물의 범주를 익히고 넓혀나가는 것과 같은, 삶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하는 인지적 능력에 의해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다고 본다.

어느 쪽이든 한쪽의 극단적 견해만으로 언어의 행태를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우리의 직관에도 맞지 않는다. 한 사람이 구사하는 다양한 차원의 언어 구조가, 그 사람의 언어 환경이 변하면서 달라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한 언어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언어를 쓰며,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유사한 언어 운용 방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인간만이 고도로 발달한 언어 체계를 유지한다는 점 등은 언어가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학습되는 것은 아님을 알게 한다.

이러한 두 관점은 또한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관한 두 관점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먼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때,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가 실제 그대로의 세계라는 관점이 있다. 이를 객관주의(Objectivism) 혹은 (전통적) 인지주의(cognitivism)라고 한다. 반대로 객관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개개인마다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한다는 관점이 있다. 이를 유아론(唯我論)이라고 한다(cf. Maturana and Varrela 2007)[각주:2]. 우리는 극단적 객관주의나 유아론이 정당하지 않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색맹인 사람들의 색에 대한 감각 경험은 색맹이 아닌 사람과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개인들이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문화와 시대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 대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유사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Maturana and Varrela(2007)에서 밝히고 있듯이, 아마도 우리는 이 두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 터이다.

인지적 객관주의와 선천적 인지 능력, 인지적 유아론과 후천적 경험은 각각 어느 정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인간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지각한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지 능력은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므로 선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면, 경험의 차이에 따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도 차이가 나게 되므로, 개인마다 인식하는 세계가 다를 수 있다.

특정 시점의 언어 구조와 체계를 밝히려는 연구들은 경험에 의해 세계 인식 방식이 변동될 수 있다는 개념이나, 인간의 언어 능력이 다른 인지적 능력과 같은 방식으로 운용된다는 개념을 수용할 필연성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의 관점, 즉 고정 불변한 언어 구조와 언어에만 해당하는 인지적 능력을 전제할 때 특정 시점의 언어 구조를 밝히고, 언어 능력을 추론하는 작업이 답이 있는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언어의 변화를 살피는 연구들에서는 이런 관점은 부담스럽다. 인간이 객관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언어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라면, 언어의 변화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해도, 경험에 따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제멋대로 변하고, 아무런 방식이나 제약 없이 언어 경험을 구조화한다면, 언어 행위의 양식을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실상 완전한 유아론이나 완전한 경험주의의 입장에 서 있는 언어 이론은 없다.

 

  1. 스티븐 핑커 2004, 「빈 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 나는가」, 김한영 역, 사이언스북스(서울). (Steven Pinker 2002, The Blank Slate: The Denial of Human Nature in Modern Intellectual Life, Viking.) [본문으로]
  2. Maturana, U. and Varrela F. 2007, 「앎의 나무」, 최호영 역, 갈무리. (El árbol del concocimiento, 1984; Der Baum der Erkenntnis, 198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