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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Lakoff

유아론(주관주의)과 인지론(객관주의) 사이의 줄타기

by 앎의나무 2009. 10. 18.

유아론과 인지론의 사이

인지론(객관주의)은 일관성의 관점에서 사유하고 활동하는 능력을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세계에는 매우 일관된 방식으로 이루어진 대상들도 있으니 그것에 대처하기에는 인지론(객관주의)의 관점이 유용하다. 체험주의에서는 이런 대상을 일관성 있는 은유의 집합이라고 본다.

객관주의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보며, 우리의 성공적 활동을 보장하고 공정성과 공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절대적 진리가 필요하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것은 가정이고, 성공적 인간 활동과 공정성 및 공평성의 보장을 위해 절대적 진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진리는 이해에 상대적이며, 이때 이해는 비보편적인 개념체계에 근거한다. 객관성은 가능하다. 이제 객관성은 개별적 편견의 극복과 관련된다. 객관적이 된다는 것은 항상 개념체계와 문화적 가치체계에 상대적인 것이다. 양립불가능한 가치체계들이 존재할 때 이성적 객관성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그럴 때를 아는 것이다.

유아론(주관주의)은 ‘의미 있음’에 대해 적절한 관점을 줄 수 있다. 모든 ‘의미 있음’은 ‘누군가에게 있어서의 의미 있음’이다. 그러나 그런 의미 있음은 완전히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상상적 이해가 전적으로 임의적이라는 낭만주의적 관념은 실제와 다르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객관주의의 집착이나, 상상력은 전적으로 무제약적이라는 주관주의의 주장에 빠지지 않으면서, 두 입장의 동기가 된 실제적이고 이성적 관심사를 어떻게 충족할 것인가.

 

자기 이해 능력은 상호 이해 능력을 전제한다. 이는 상식과 배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왜 지금처럼 어떤 일을 하고, 느끼고, 바꾸고, 믿는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넘어서는 차원이 요구된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물리적, 문화적, 대인관계적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관계를 설정해야 ‘나’를 인식할 수 있다 - 앎의나무] 상호 이해에 필요한 기술은 자기 이해에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