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특권을 몹시 탐내는 것 같다. 그것도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의 출생, 이를테면 우리가 인간이고 지구 위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실만으로. 우리는 그것을 인간중심적anthropocentric 과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과신은 인간이 신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는 생각에서 거의 절정에 다다른 것 같다. 전우주의 창조자 및 지배자가 나를 닮았다니. 아니, 이런 우연의 부합이 있는가! 이 얼마나 편리하고 만족스러운 일인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는 이런 생각의 오만함을 이해했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을 검은 피부테 납작코로 만들었다. 트레이스(지금의 불가리아) 지방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이 푸른 눈과 붉은 머리털을 가졌다고 말했다. ... 그렇다 그리고 만약 황소와 말이나 사자가 손을 가졌고 손으로 사람처럼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 말으느 말처럼, 황소는 황소처럼 신을 그렸을 것이다 ...
이런 태도는 과거에 <지방적> 근성 - 보잘것없는 외진 시골의 정치적 계층이나 사회적 풍습이 여러 다른 전통과 문화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리라는 순진한 기대감, 친숙한 자기 마을이야말로 세계의 중심이라는 망상-이라고 표현되곤 했다.
이상,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40-4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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