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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zing

자본주의

by 앎의나무 2009. 8. 6.

박노자 선생의 블로그에서 장자연 사태와 관련된 글을 읽으니 다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본 '불교 경제학' 챕터가 생각이 났다. 

자본주의는 자본 경제학이다.

앞의 어느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경제학은 인간 욕망의 동역학적 사회학이다. 자본주의, 곧 자본 경제학은 물화(物貨)에 대한 욕망에 의해 짜여지는 사회학이다. 따라서 곧 물질 경제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욕망하는 것이 물질일 때, 그러한 욕망에 의해 사회질서가 조직될 때, 그밖의 모든 것은 물질로 환원되게 마련일터. 물질에 반대되는 모든 정신적 가치는 물질의 대명사인 자본의 가치로 환원된다.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이것은 플라스틱 가방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천 가방의 값이 명품 루이비똥 가방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고 하니, 정신적 가치의 물화가 자본주의에서 얼마나 쉽게 일어나고, 또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는 만큼, 정신적 가치가 얼마나 가꾸고 나누기가 어려운지 짐작기 어렵지 않으리라.

장자연 사건이나, 로비 사건, Zeitgeist 같은 영화가 이야기하는 악순환들... 이 모든 것이 자본 경제학에 근본적 원인을 두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근본적 본능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18세기말~19세기초의 발명품이라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슈마허가 불교 경제학이란 개념을 이야기한 것이 타당하다면 (나는 십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중세는 신분 경제학이 사회의 근간이었다고 해둘 수 있겠고 (중세가 아무리 암울했다곤 해도 그 사이사이에 노자나 붓다 같은 자비/인의 경제학을 설파한 사람들도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극복했으니, 더 나은 세상은 왜 불가능하겠는가.

인간이 욕망하는 바가, 모든 인본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숙한 인격이 되는 것이라면, 즉 자아성장의 경제학이 이 사회의 근간이 된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는가.

수 많은 선각자들과 스승들이 인류는 성장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 

나는 그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