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슈마허7

똘똘한 것과 슬기로운 것의 차이 슈마허의 짧은 책 에는 '불교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챕터가 들어 있습니다. 제목에는 '불교'가 있지만, 종교와는 거의 관계 없는 내용이에요. 인간 사회에 가능한 중심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 자체가 '경제'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그에 따른 비전을 제시해주는데요, 제게는 그 중에서도 '불교 경제학' 챕터가 오래 동안 남아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뭐랄까... 발상의 전환으로 돌파구가 생겼을 때의 희열이라든지, 희망이라든지, 훈훈함이라든지 말이에요. 엊그제 다람쥐길을 걷다가 문득 불교경제학에 적혔던 내용이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따라온 생각들이 몇몇 있는데 여기에 적어봅니다. 나찌가 학살했던 많은 사람 중 훌륭한 예술가, 인류진보를 앞 당길 사상가, 우리의 앎을 넓혀줄 학자가 있었을 수 있.. 2010. 6. 22.
자본주의 박노자 선생의 블로그에서 장자연 사태와 관련된 글을 읽으니 다시 에서 본 '불교 경제학' 챕터가 생각이 났다. 자본주의는 자본 경제학이다. 앞의 어느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경제학은 인간 욕망의 동역학적 사회학이다. 자본주의, 곧 자본 경제학은 물화(物貨)에 대한 욕망에 의해 짜여지는 사회학이다. 따라서 곧 물질 경제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욕망하는 것이 물질일 때, 그러한 욕망에 의해 사회질서가 조직될 때, 그밖의 모든 것은 물질로 환원되게 마련일터. 물질에 반대되는 모든 정신적 가치는 물질의 대명사인 자본의 가치로 환원된다.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나온 '이것은 플라스틱 가방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천 가방의 값이 명품 루이비똥 가방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고 하니, 정신적 가치의 물화가.. 2009. 8. 6.
진선미성 근대인은 자연을 파괴하는 생산체제와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사회를 건설했다.생산 증대와 부의 획득이 근대 세계 최고의 목표가 되었으며, 다른 목표들은 모두 입에 발린 소리로만 대접 받을 뿐,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고의 목표는 정당화가 필요 없다. 허나 부차적인 목표는 그것의 달성이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정도에 비추어 정당화된다.이것이 물질주의 철학이다. 그러나 전세계 그 어느 곳에서든지 간에, 이런 철학에 도전하며 다른 가치관을 주창했던 현자나 교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들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내세가 아니라, 그것들이 필요한 이곳 현세에서 바로 그것들을 추가로 얻게 될 것"이라고 배웠다생산의 논리는 생명의 논리도 아니고 사회의 논리도 아니다. 생산.. 2006. 8. 28.
개발도상국과 농촌의 부흥을 위해 원조가 성공으로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란 오직 원조가 원조 받는 국가에서 대중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데 도움을 주어노동을 '절약'하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경우뿐이다.의도하지 않은 신식민주의는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신식민주의보다 교활하며, 저항하기에도 훨씬 더 어렵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비롯된, 그것도 최선의 의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빈국과는 관련없는 기준이나 제도는 이미 풍요로운 사회에만 적합한 것이므로, 이를 통해 빈국은 점점 더 피하기 힘들 정도로 부국에 대해 완전한 종속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빈국이 부국의 생산과 소비에 매혹되었을 때 나타나는 종속이다.최상의 원조는 지식 원조, 즉 유용한 지식의 증여이다. 지식의 증여는 물질의.. 2006.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