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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zing

KT 무선 통신망 개방에 대한 단상

by 앎의나무 2009. 11. 29.

http://www.ebuzz.co.kr/content/buzz_view.html?uid=82880&portal=001_00001

 

KT가 이제사 정신을 차렸나봅니다.

 

메이저 통신사들이나 포털사들이 반복해온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또 한 가지 사례이겠지만, 그나마 이렇게 해서 두 번째 소는 잃지 않겠지요.

실상 와이브로 기술을 온전히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도록 하고자 했다면

KT는 와이브로 기술을 내 놓았을 때 이미 무선 통신망을 온전히 개방했어야 했겠지만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더 큰 이점을 못 보았던 것이지요.

 

무선 인터넷을 가동하기 위해 새로운 설비를 추가하거나 인력이 동원될 필요가 전혀 없는 대한민국 무선통신망. 이를 이용해 거의 값이 들지 않는 패킷 전송을 각 단위마다 값을 매겨 돈을 벌겠다는 발상.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전자도토리를, 실물로 대체가능한 현금으로 팔겠다는 발상. 거저 먹겟다는 못된 심보. 오만한 인간 본성.

 

이제부터는 위와는 직접적 관련은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 더 심원한 차원에서 깊이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폐쇄 소스 및 폐쇄 네트워크는 무한인터네트에 적응되기 어렵습니다.

이는 자연선택의 가장 기본적 도출입니다.

무한 네트워크라는 환경에 있어서는 MS보다 오라클식 존재/생존방식이 더 적합합니다.

네이버 블로그도 점점 오픈 네트워크에 적응될 수밖에 없었고, 오라클에서 시작된 한 단계 높은 생존방식을 결국 다음이나 애플도 재빠르게 간파해서 적응했고, MS도 결국 무릎을 꿇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은 소멸하든가. 환경의 변화에 대해 유연성이 없었던 모든 종은 결국 화석으로만 존재를 대변하게 될 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프로그램되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 중 하나는 자와 타를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이든 나의 자본 축적을 위한 목표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존의 패턴이 자유롭고 개방된 네트워크 앞에 무기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식과 문화를 공유 및 향유하고, 서로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에 저항하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가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표현이 적합하겠지요.

 

resistence is futile.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 최대 진화 단위는 단세포의 연합인 다세포 생물, 그 중에서도 신경절점이 한 곳에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몇몇 동물(몇몇 영장류)에 한정된다고 봅니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발생학자인 마뚜라나, 바렐라 및 생물학자? 미하이칙센트미하이의 견해를 제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기술한 것입니다.)

 

물질에서 자율적으로 신진대사를 하는 최초의 단세포 생물이 나타난 것을 제 1단계 진화의 전환점으로 봅니다. 이 단세포 생물들이 연합하여 더 큰 단위를 만들고 그 더 큰 단위의 특정 부위에 맞는 기능을 하도록 발달한 것을 2단계 전환점으로 봅니다.

(3단계 전환점부터는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아마도 모든 지구상의 존재가 3단계 전환점의 과도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더 높은 단계에 있지 않는 이상 3단계를 회고적으로 관찰할 수 없겠지요.)

3단계는 바로 2단계의 개체들이 군집을 이루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해, 2단계의 결과물인 다세포 생물 개체들이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사회라는 조직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적어도 인간 사회를 보아 어쩌면 미하이칙센트미하이 같은 학자가 주장하는 '영성적 진화'가 어쩌면 사회가 나름의 의식을 가지고 독립된 개인과 연대하게 되는 단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네트워크는 현재 인간의 삶을 특정방향으로 변하도록 하고 있으며, 인간 사회는 대체로 적응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압니까, 무선통신망이라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 인간 사회를 4단계 진화로 이끄는 촉매가 될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소멸하고 개인의 인간성을 발휘하여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조직되는 공동체를 상상해 봅니다.

 

대안이 무엇이 될지는 모릅니다. 정말 그런 공동체가 도래할지 아닐지 모르지요.

하지면 자본주의라는 현재의 인간환경이 지속된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류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대중을 속이고, 현재를 위해 미래를 담보하여 지구와 지구의 모든 생물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적게 잃기 위해 무엇이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성은 자멸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멈추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이 관성은 바로 인간이 서로를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고 그것을 더욱 강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원한 것 아니겠습니까?

 

뺏으면 많아지고 빼앗기면 잃는다는 물질 기반의 발상이 우리를 정말 불행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생각을 주어도 나의 생각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주어도 줄어들지 않으며, 오히려 더 많아지고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근시안적이고 오만한 지금의 인간의 본성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까요.

공룡의 화석과 네안데르탈인의 찬란했던 문화의 뒤를 잇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