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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zing/Ecolize

나쁜 어른들 (<88만원세대> 발췌)

by 앎의나무 2009. 10. 6.

우석훈, 박권일 <88만원세대>, 레디앙, 2007.

[…]는 생략표시
[   ]는 본인이 주를 단 것
{   }는 내용요약
 
단락 끝의 숫자는 인용 쪽수


오랫동안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6년 동안 사교욱에 붙잡혀 있던 사람들은 정상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중고등학교만 치더라도 6년 동안을 집단 유괴범 같은 흉악범들에게 “공부 안하면 죽인다”는 협박과 “돈 가져오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는 협박을 받았던 사람이 제 정신이라면 이상한 일이다. 이 충격은 평생을 갈 충격이다. (224p)

지난 5년 동안 [2002-2006] 한국 사회를 강타한 1318 마케팅은 10대들의 정신세계만 황폐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10대들의 다양한 감수성이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을 ‘과시적’ 소비로 채워버린 셈이다. 성장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 자체를 갉아먹는 행위였다. 신문과 방송까지 총동원된 1318 마케팅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국 패션산업이 도약을 거듭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섬유업의 근간은 이미 무너졌고, 자체 디자인 개발 능력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바로 전 세대에도 있었던 문학소녀도 사라져버렸다. 문화적 다양성은 사라진 대신 소비되는 화장품의 종류만 다양해졌다. 상품 다양성은 문하 다양성과 많이 다를 뿐만 아니라 현대 경제학이 강조하고 있는 창의성과 독창성 역시 이런 소비 행위 속에서 기계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의 1318 마케팅은 거의 ‘세대 착취’ 현상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했다. 케인즈는 일찍이 ‘소비는 미덕’이라고 갈파했지만, 그것은 시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인 소비자의 이야기다. 10대들을 아무런 방어 장치 없이 마케팅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는 현대 자본주의도 아니고 건전한 자본주의도 아니다. 그저 노동자 대신 10대를 노린 ‘세대 착취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pp. 69-70)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는 시대, 그 시대 역시 지금과 같은 승자 독식의 사회이자 무방비 상태로 세대 간 경쟁에 내몰릴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양상의 경제시스템이 나올 것인지는 기다려보면 알 수 있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반반이다. 상대적으로 내수가 위축되는 현 상황에서 10대를 노리고 있는 ‘마케팅 세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마케팅이 아닌 어른들은 10대가 독서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예산과 제도를 비롯한 많은 지원을 해주겠지만, 마케팅 세력은 10대들에게 주어진 용돈을 독서가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하도록 계속 유도할 것이다. 작지만 이 두 가지 힘의 싸움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나머지 힘들 사이의 균형을 결정할 가장 큰 요소이다. (1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