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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zing

사치스러운 것

by 앎의나무 2008. 12. 31.
쓸쓸하다, 허전하다 정도의 말은 산뜻한 수채화 같은 기분이어서 괜찮다. 그러나 외롭다, 고독하다는 따위는 실격이다. 말만 그런게 아니고 느낌 자체의 깊이가 의심스러워 칙칙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외롭다는 말을 하고 보면 내 자신이 싫어지고 남이 그 말을 자꾸 하면 아주 싫어진다.

실상 요즘 우리들 생활에는 외로와질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데 더 큰 괴로움이 있지나 않을까? 몸이 바쁘다는 것은 건설적인 뜻에서 좋을지 몰라도 남의 일로 하여 너무 많은 생각을 빼앗긴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우리는 매일 아까운 시간과 귀중한 마음을 보람 없이 버리고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첫째 인간관계로부터 교우 혹은 사회로 말미암아 의무는 항상 명심하고 있으며 애정을 위해선 당연한 일, 다만 한계를 넘어선 연대의 강요가 고통이라는 이야기다.

좋은 일, 궂은 일 가려서 살 수 없다고 나무라면 자기의 이기심을 뉘우치게도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 것들로부터 놓여 난 일도 없고 그 괴로움에서 놓여 난 일도 없다. 달아나려고 하면 그럴수록 더욱 더깊이 물려 들어 가서 꼼짝 못하는 집단과의 연결, 과연 거기서 풀려 나간 사람이 있을까? 제아무리 두문불출하고 방 한 간을 세계로 삼는대도 현대는 시속이 빨라서 갖가지 전파가 끊임 없이 개인의 고효한 심상을 허물고 다지고, 한 그루의 나무처럼 있는 대로 내버려 두는 일이란 결코 없다.

그런데 고독하다, 외롭다는 말이 나오니 모순 덩어리다. 이 덩어리는 내부에 있는 것일까? 외부에서오는 것일까? 아뭏든 잘라서 말할 수 없는 오만가지 복잡한 그늘 속에 있는 사람의 일이긴 하지만 편리한 이 문명황금시대에 자유(고독)와 구속(친화)의 두 갈래 길으르 왔다갔다 하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옛날보다 더 절박하게, 그러나 한국의 우리는 슬픔보다 더 짙은 노여움을, 외로움보다 한결 더한 초조함을 느끼며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런 뜻에서 자유나 외로움은 아직도 우리에겐 귀한 것이며 함부로 유행가처럼 부를 수 없는 사치인 것만 같다.

"기다리는 불안" <의상을 걸치고 18>,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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