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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3

본질의 가능성 결합을 회피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 속에서 그리움과 두려움이 오랜 세월 동안 심한 투쟁을 거듭해 왔다. 비겁하게도 괴로운 분쟁에서 내가 놓여나기 위해서는 무거운 불치의 병 및 죽음에 가까워짐이 필요했다. 10년 전의 나는 지금처럼 내 자신을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나의 맹렬한 폭발이 니나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니나에 대한 나의 투쟁이 이 한 여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의 본질의 특수한 방향으로의 발전과 인식을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동시에 어떤 여자를 선택하느나 하는 문제가 여자의 선택에 해당하지 않고 나 자신의 본질의 가능성의 선택인 것을 몰랐었다. 나에게 없다고 부인하려고 했던 나의 본질의 일부분과 가능성을 니나가 구현하고 .. 2010. 1. 27.
사회적 타성에 대해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간단하게 해버리는 사람이 싫다. 모든 것이 이처럼 무섭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ㅡ 루이제 린저, 中 2008. 12. 23.
패배의 기록 ㅡ 나는 나의 패배에 관해서 써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의 실패는 일종의 희극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깊은 수치의 감정이 이 사건의 희극적인, 그로테스크한 면을 물리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한 달 전에 니나를 방문하기 위해서 웬하임에 갔었다. 그리고 나는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 패배의 정도를 내가 승인할 용기가 생기기까지 한 달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것에 관해서 기록하는 것은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기록한다는 것은 사정없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상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서 그것을 해야 한다. 나는 다시는 니나를 만나지 않겠다. 그리고 이 기록과 더불어 내 생의 이 장이 결정적인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루이제 린저, 에서 2008.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