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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Keller

학문의 대상으로서 언어의 위상에 대한 단상

by 앎의나무 2008. 3. 4.

김현주(2006) "학문의 대상으로서 언어의 위상에 대한 단상" <나랏말씀>22.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편집위원회.


학문의 대상으로서 언어의 위상에 대한 斷想


김현주(국어학반)


  언어는 인간과 독립된 유기체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가.

  언어는 자연과학의 대상인가 인문과학의 대상인가.  

  공시와 통시는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의 속성인가 언어를 보는 이론인가.


1. 들어가며


  어떤 대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기껏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학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체계적인 지식을 찾는 작업을 학문적인 연구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학문이 무엇인지, 학문적인 연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 이렇게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아는 학문의 각 분야들에서 추출되는 공통점이 그만큼 희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이 무엇인지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면, 우리는 반드시 두어 갈래로 나누어서 설명해야 한다. 즉, 대상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과, 대상의 ‘인과 관계가 어떻게 항상성을 가지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 등으로 나누어 살펴야 한다. 서양의 학문적 전통은 이러한 구분을 ‘인간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신의 작품에 대한 연구’라는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신의 작품에 대한 연구’는 자연과학을 의미한다.

  본고가 펼쳐갈 이야기를, ‘국어학을 포함하여, 언어학이 이 두 구분 중 어디에 포함되느냐’에 대한 답변으로 파악했다면 위의 짧은 글을 오해한 것이다[각주:1]

. 여기에서 독자들이 파악해야 할 것에는, 대상의 성격에 따라 학문의 정의가 달라진다는 것도 있다. 물론 이는 학문의 방법론이나 태도까지도 그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함의한다.

  이제부터 본인은 Rudi Keller의 언어변화(Sprachwandel)를 읽고서 알게 된 사실과, 이와 관련하여 품게 된 생각들을 될 수 있는 한 이해하기 쉽게 말해 보려고 한다. 물론 필자에게는 일종의 복습이 되겠고, 독자들에겐 단편적이고 산만하여 난해한 글일 것이다. 이점 양해를 구한다. 그럼, 우리의 주요 관심사에 대한 질문으로 본론의 문을 열어보자.

  ‘언어’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것은 어떤 작업이 되어야 하는가? 혹은 어떤 작업이 될 수 있는가?



<참고문헌>

김현주 2003. “영화 속의 기호” 「나랏말씀」20.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편집위원회.

김현주 2005. "존대법 {-습-}의 역사적 변화".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Bloomfield, Leonard. 1933. Languag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Bybee, Joan L. 1985. Morphology: a study of the relation between meaning and form. Philadelphia: Benjamins.

                2001. Phonology and Language Us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eine, Bernd 1997. Cognitive Foundation of Grammar .Oxford University Press.( 문법의 인지적 기초 : 이성하, 구현정 번역. 도서출판 박이정)

Ivić, Milka 1962. Trends in Linguistics. (「언어학사」: 김방한 역. 1985.)

Jakobson, Roman 1978. Six Lectures on Sound and Meaning. MIT Press, 1978.

Keller, Rudi 1990. Sprachwandel. (「언어변화」: 이기숙 옮김. 서광학술자료사. 2000.)

Keller, Rudi 1995. Zeichentheorie. Kundenbewertung. (「기호와 해석」: 이기숙 옮김. 인간사랑 폄. 2000.)

Lee, David 2001. Cognitive Linguistics : An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인지언어학 입문 : 임지룡, 김동환 옮김. 한국문화사)

Robins, R. H. 1997. A Short History of Linguistics. Longman Linguistics Library.

Sapir, Edward. 1949. Language. Harcourt.

de Saussure, Ferdinand. 1916.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Translated by Wade Baskin, McGRaw-Hill)



  1. 오해와 이해는 모순개념이 아니다. 일상 대화에서 이해와 오해는 종종 공존한다. 화자의 의도를 알게 되는 것을 대화상의 이해라고 할 때, 그 이해에 더해 화자가 의도했던 것 이상을 해석해 내면, 그것도 오해라고 한다. 따라서 화자가 의도했던 여러 가지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완전한 오해가 이루어진 상황이 아닌 이상, 흔히 ‘오해했다’고 할 경우 언제나 이해와 오해는 공존한다. [본문으로]
  2. 하지만, 진화론이 스코트랜드 도덕철학자들의 사회과학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Radl 1909 : 198, Keller(1990 한국어판 :207)에서 재인용)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다. [본문으로]
  3. 여담을 하자면, 그림동화의 작가인 그림 형제 중 한명이 바로 이 야콥 그림이다. 영화 <그림 형제>에서는 영어식발음은 /제이콥/(/제이크/는 애칭)으로 불린다, 영화에서는 야콥이 동생인지 형인지가 불분명하다. [본문으로]
  4. 철학과 문학의 강력한 영향을 피해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본문으로]
  5. 이러한 사실들이 ‘진실’인지 ‘연역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가령 ‘모든 경험세계는 변한다. 언어도 경험세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고로 언어는 변한다.’라는 논리는 다시 ‘모든 경험세계는 변한다.’는 명제가 ‘진실’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이를 증명한다고 해도, 다시 같은 종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본문으로]
  6. 드 소쉬르(de Saussure, Ferdinand)의 생각이나 주장과 관련하여, 심하게는 모순되게까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 중 상당한 부분은 그의 저서(라고 알려진) 「일반언어학강의」(원제 :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의 내용과 관련된다. Keller(1990 : 179)를 인용해 보자. 알다시피 이 책은 드 소쉬르 사후에 나온 책이고, 그의 수업에서 수강생들에 의해 기록된 노트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직접적인 저자는 ‘샤를 바이’와 ‘알베르 세슈에’이고, 이들은 드 소쉬르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접하는 「일반언어학강의」의 “원전”은 학생들의 강의 노트와, 당대 이미 저명한 언어학자로서 자신들이 지녔던 언어적 관점과 지식이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서도 해석상의 왜곡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미흡한 노트에서 강의를 “재구성”할 때, 저자들 자신의 이론들이 드 소쉬리의 것으로 섞여드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본문으로]
  7. 촘스키의 이론은 모든 인류의 머리 속에 있는 공통된 문법, 즉 UG(Universal Grammar, 보편문법)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UG는 과거의 언어이든 현재의 언더이든 영어이든 한국어이든 모두 동일하다. 이 이론의 신봉자들은, ‘우리가 읽고, 듣고, 보고, 쓰는 표면의 언어는 UG와 해당 언어의 내면 문법(I문법)을 통해 도출되는 것으로써, 그 도출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 규칙들을 통해 UG가 I문법을 거쳐 최종적인 표면의 언어(E언어)로 나타나게 된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생성문법은 언어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엔 큰 관심이 없다. 생성문법이 ‘설명’하려는 것은 인간의 언어‘능력’이다. [본문으로]
  8. 해당 상태를 이끄는 다양한 원인들은 대개 퇴적적으로 작용하므로 공시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또한 그런 작용들은 해당 상태에 대해 의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Bybee(2001)에서는 언어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공시태나 통시태가 아닌 범시태(Panchronie)를 상정하였고, Keller(1990)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를 상정하였을 것이다. [본문으로]
  9. 역사적 학문, 즉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대한 학문의 1차적 목적이 존재이유(Raison d'être)를 밝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이 어휘를 언어의 어떤 시점이든, 한 시점을 고정한다고 해도, 안정되고 정태된 상태가 아님을 강조하는 의미로만 사용한 것임을 밝혀둔다. 고정되어 있지만 역동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조각이나 그림이나 사진은 우리 주위에 널렸다. [본문으로]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뮐러는 언어를 자연물로, 위트니는 인간의 가공물로 보았다. 당시, 서양의 학문적 전통이 세계를 그 둘로만 나누어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문화로부터 그 구성원에게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사고의 틀(이를 흔히 ‘집단의 기억’ 혹은 ‘이데올로기’라고 한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본문으로]
  11. 1670년 로테르담의 명망 있는 위그노파 집안에서 태어났다. 라이덴 대학에서 1689년에 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691년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1696년에 영국으로 가서, 1699년에 영국 여인과 결혼하여 그곳에서 신경 및 위궤양 전문의로 활동하다 1733년 1월에 생을 마감했다. 만데빌의 역설은 스코트랜드 도덕철학파의 사상과 관련이 깊다. 밴덤이나, 애덤 스미스가 이 철학 사조에 기반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다시피 다윈의 진화론도 이들의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12. 이런 식의 언어변화에 해당하는 좀더 전문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15, 16세기 국어에는 객체높임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종종 문장의 객체(목적어나 여격어 따위의 외연)와 청자가 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 경우 청자높임의 선어말어미 {--}는 거의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은 그럴 필요가 없었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체인 청자를 높이기 위해 {--}은 어느 정도 사용되었고 이런 경향이 후대로 올수록 강해진다. 이런 쓰임의 확장은 결국 {--}의 의미를 청자높임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는 화자들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 현대국어 ‘습니다’의 ‘습’이 {--}의 후계형이다. [본문으로]
  13. 그런 의미에서 언어 정책은 경제 정책에서 본받을 바가 크다.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고전적 정책은 건설 관련 대출 이자율을 낮추는 것이다. 건설업자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건물을 짓지만, 그 결과는 종종 건설 경기의 활성화로 나타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언어를 순화하기 위한 정책은 ‘이런이런 말’을 쓰라고 공표하는 방식이어서는 성공적일 수 없을 것이다. 언어 순화의 정책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어야 한다. : 만약 전국민적 증오의 대상이 되는 어떤 드라마의 악역배우가 ‘순화해야할 대상이 되는 어휘’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할 경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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