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 프랑스의 출전선수 명단을 보았다. 선수들의 이름 옆에 써 있는 팀들은 올림피크 리옹 X 3, 첼시 X 2, 유벤투스 X 2, 아스날,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들이었다. 완전한 공포 그 자체였다.
한국 선수들의 이름 옆에 써 있는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스와 같은 팀들이 그만한 ‘공포 지수’를 전해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선수들의 생년 월일은 좀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정보였다. 프랑스의 베스트 11 중 단 한 명의 선수만이 80년대에 출생인 반면 한국엔 5명의 80년대 출생자가 있었다. 실뱅 윌토르는 경기 전 연습을 끝마치고는 완전히 녹초가 된 듯이 보였는데 이 역시 우리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광경이었다.
언론들은 늙은 프랑스 팀이 활기찬 호랑이처럼 젊은 한국팀에게 고생할 것 이라는 이야기들을 해왔었다. 한국의 수비가 전반전에 ‘레 블뢰’의 공격을 묶어놓을 수만 있다면 프랑스는 초조함 속에 지쳐갈 것이고 또다시 득점에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경기 초반 득점에 성공하며, 예상했던 방향의 경기가 전개되지는 않았다. 한국의 느린 센터백 듀오인 최진철과 김영철은 앙리를 상대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실점하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격력 보다는 수비력으로 인정 받는 이을룡, 김남일, 이호의 트리오로 후방을 지키겠다고 결정했던 것 같다. 이러한 전술은 박지성이 윙어로 플레이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팀의 에이스이자 가장 효과적인 선수를 윙 포지션에 둔다는 것은 실수였다.
박지성이 그다지 많은 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분명한 낭비였다. 박지성은 중앙에서 플레이하며 지단과 비에라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그의 에너지로 팀을 전방으로 몰아가야 했다. 박지성이 플레이 메이커는 아니지만 한국 선수 중엔 가장 그 역할에 근접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호는 종종 고립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21살의 어린 선수에게 프랑스의 노련하고 능력 있는 미드필더들을 제어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는 경기 초반, 완전히 시합을 지배했다. 그리고 아드보카트 감독은 5일 전에 그러했듯이 후반전에 전술 변화를 가져왔다. 꼭 그래야만 했었다. 후반전에 살아난 경기력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줘야겠지만 왜 전반전을 그러한 선수 구성으로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후반전에 박지성이 중앙으로 이동하자 상황은 좋아졌지만 동점을 만들기 전까지 한국이 보여준 플레이는 득점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한국이 득점 할 때 보여준 긴 크로스에 이은 헤딩 연결, 쇄도하는 미드필더의 슈팅, 이는 단순했지만 모범적인 득점 상황이었다.
프랑스는 승리할 만한 자격이 있는 팀이었으나 축구에선 ‘~할만 하다’고 해서 항상 그러한 결과가 주어지진 않는다. 비에라의 득점이 인정되지 않은 뒤 (요즘 이운재의 몸은 계속해서 안쪽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고, 후반전에 그는 거의 골 라인 안에 들어가 있었다) 프랑스는 그들의 집요함을 잃은 듯이 보였다. 물론 후반전에도 공격을 계속하긴 했지만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축구의 오랜 교훈이 있다. 경기를 얼마만큼 지배했건 간에 1:0의 리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반전, 파비앙 바르테즈는 자신의 머리위로 넘어가는 동료의 헤딩을 바라보는 것 빼고는 거의 할 일이 없었다.
한국의 득점은 프랑스의 탄탄한 수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사실상 한국은 충분한 공격을 보여주진 못했다. 어쩌면 한국 선수들이 프랑스 선수들을 너무 존경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득점이 나오고 나자 경기는 불붙기 시작했다.
한국이 비록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정신력은 대단했다. 그 어떤 다른 팀이라도 프랑스와 비긴다면 기뻐할 것이다. 이 경기는 프랑스의 이웃 국가에서 열렸고 플레이가 잘 되지도 않았지만 한국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 팬들은 다시 한번 굉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경기 내내 춤추고 노래하며 프랑스 팬들을 완전히 눌러버렸다. 가장 열정적인 팬들을 가리는 월드컵이 있다면 한국이 쉽게 우승할 것이다. 실제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은 16강 진출이 저만치 보이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번역: 조건호 (스포츠 전문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