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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zing/Maturana and Varela

사랑

by 앎의나무 2008. 8. 10.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결정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나 당신이 무엇을 하건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선언하라. …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할 수 없다고 깨닫게 된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위들이 갖는 성질이 그들의 지혜의 범위에 달려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된다. 치료사들의 지혜란, 편견 없이 경청할 수 있는, 그리고 ‘개방성과 무간섭’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능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관계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편견과 개인적 편애, 기만술, 소유욕에 의해 왜곡되지 않게, 그것이 드러나는 형태 속에서야 지각될 수 있다. 이것을 해내기 위해서 우리는 최대한 경청해야 하며, 우리의 지각이 성급한 판단 때문에 맹목적으로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고 듣고 있는 것에 영향을 끼치는 감정들을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화를 내며, 질투심이 강하거나 오만한 사람들은 모두 틀림없이 제한된 방식으로 들을 것이고, 그래서 그 이상의 마주침의 가능성들을 배제할 것입니다. 집중과 배려는 타인의 특수한 성질들에 의해 억제됩니다. 우리의 경청을 제한하지 않고 넓혀 주는 유일한 감정이 바로 사랑이다.

사람들이 ‘증오’, ‘공포’,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의미하는 바를 주의해 보면, 그들은 항상 어떤 상관적 행위의 특별한 영역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가 어떤 감정을 구별하여 파악할 때, 구분하는 것은 상관적인 행위 영역이다. … 따라서 우리가 어떤 다른 사람이 특별한 감정을 드러낸다고 말할 때, 혹은 우리가 누구라고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특별한 상관적 영역 속에서 그 대상을[그/그녀/나]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감정들은 상관적 원리를 구성한다. … 행위로서의 특별한 상관적 특징을, 우리가 하는 것에 부여해 주는 특별한 감정 속에서, 우리는 한다(산다). [각주:1]

우리는 자기 자신과 공존하며 정당한 타자로 나타나는, 상관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 안에서 사랑의 행위를 본다고 말한다. 나와 공존하는 정당한 타자. 정당화에 대한 요청이나 요구는 없다. … 사랑은 누군가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의도된 행동이 아니다. 사랑은 단방향적이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타자의 정당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일어난다.

상호작용은 말하자면 체계의 창조와 유지에 참여하는 차원들에 대응하는 알맞은 각도에 맞춰 위치가 정해진다. … “이 아이는 끔찍하게 못되게 행동한다니까요!” 그럼 나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고 결국 그 소녀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청의 성애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상황에 맞게 해내야하는 직각적 마주침이다.

우리는 언제나 근본적인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다른 인간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존재의 형식을 시도하고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함께 약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치료사들이라고 가정한다면, 언젠가 환자가 변모되는 것을 느낄 것이며,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다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ㅡ<있음에서 함으로>, 마뚜라나, pp. 188ff
  1. 정서가 인지와 지혜를 지배한다던 EBS 다큐프라임의 한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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