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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No royal way

[고대대학원신문_144]공부론_고전을 읽어 학문적 변방을 확장하라

by 앎의나무 2008. 3. 16.
이 글에서는 공부를 어떻게 해왔는가보다는, 이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마음을 한두 자 적어보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공부를 잘 못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제껏 공부도 많이 하지 않고 아직도 공부할 시간은 적잖이 남아 있는 주제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못내 망설여진다.


시작한 것에 매진하라


먼저, 공부는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소한 이십대 중반을 지나면서 학문을 직업으로 삼을 것을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런 경우가 부러운 것은 기나긴 학문의 여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 여정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그래야만 나름의 견해를 세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장점은 어떤 경우 자신이 신봉했던 견해를 긴 시간이 지나 수정할 수 있는 혜택마저 누릴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 생각하니 그것은 이런 저런 잘못이 있는 것이었다는 고백은 공부를 일찍 시작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삼십이 되기 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그의 논문은 썩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의외로 매우 차분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것은 콘라드(Joseph Conrad)의 단편소설들을 서한들과 연계하여 다룬 논문이었다. 시작은 미약하였다. 하지만 거기엔 분명 꼼꼼한 읽기와 세세한 것에 대한 주의라는 훈련과 자제의 모습이 역력하였다. 이후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거쳐 오리엔탈리즘론을 제기할 때까지의 흐름은 매우 일관성 있는 발전이었다. 비슷한 경우를 들자면 한이 없다.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서른다섯 전에 난해하기 그지없다는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영어로 번역하고 또 본문보다 더 관심을 모은 긴 역자서문을 썼다. 이후 여러 가지 방법론과 대상을 섭렵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심화해 나간 학문적 여정을 향유하고 있다. 루카치(Georg Lukács)가 <소설이론>을 쓴 것 또한 서른다섯 이전이다. 이제와 이렇게 짚어보니, 내가 앞뒤를 재지 말고 학문에 뜻을 두고 그냥 매진했었으면, 글쎄 약간의 가능성은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후회되는 사안 가운데 하나이다.


탐색의 장, 학회


나의 경우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미국의 국가건설과 문학이 갖는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미국은 매우 인위적으로 세워진 국가라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 가운데 문학이 한 역할은 무엇일까에 대한 연구였다. 여기에서 문학은 매우 현실적인 다양한 문건을 포함하고, 특히 청교도 등 신학적인 문건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독립 등의 문제가 등장하였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면서 자연히 식민주의 혹은 탈식민을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논리에 파농(Frantz Fanon)을 동원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영문학에 있어 이러한 주제는 오히려 영미와 여타 지역에서 영어로 쓰이는 문학과의 관계에서 더 타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한 지렛대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당시 영문학 연구에서 적절한 것일 수 있다는 확신은 다른 동료들과의 즉 다른 대학원생들과 대화를 통해서 강화될 수 있었다. 다른 대학원생이란 교내의 동일 분야의 동료는 물론 다른 분야의 동료들을 말한다.


내 학문 분야에서 앞으로는 어떤 분야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해나가야 할지를 탐색하고 교환할 수 있는 장으로는 학외의 큰 학회가 더 없이 좋았다. 크고 좋은 학회에 몇몇 대학원 과정 동료와 함께 참가해, 발표를 듣고 함께 한 토론이 많은 것을 줄 수 있었다. 대가(大家)의 발표는 대가의 것이니만큼 분명 도움을 주었고, 소가(小家)의 발표 또한 못지않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특히 대학원생만으로 이루어진 발표장의 경우 치열하게, 어떤 경우 무질서의 극치로, 오간 토론과 논쟁은 앞으로 갖게 될 시각과 하게 될 연구들의 부화장 같았다. 그때 그렇게 얼굴을 익힌 대학원생들이 영미 등 세계 주요대학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반가움과 자책의 감정이 뒤섞이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때 틀린 말이 될지라도 나 역시 더욱 치열하게 논쟁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될 뿐이다.


정전을 이해하라


이런 학회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어떻게 학문적 변방을 확장하는 것이었느냐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분명 기존의 정전(正典, canon)에 대한 반발에 못지않게 정전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에 기인한 것이었다.


다시 우리로 돌아와 본다면, 우리 서양학의 경우는 이제 정전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 온 것 같다. 정전의 확장과 변방에 대한 관심에 못지않게 정전 자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은 답보 상태에 있는 듯하다. 정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반발에서 변방과 타자에 대한 연구의 운동성이 생성되어온 역사적 추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 서양학의 경우 서양 고전에 대한 학문적 이해에 더 많은 공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서양학을 한다지만 <오디세이>와 <신곡>을 박사과정에서야 꼼꼼히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것도 모든 학과 과정이 끝나고 학부수업의 보조자로서 일하면서였다. 한층 일찍이 이런 기회를 접했었다면 나의 길과 깊이는 어느 정도 달라져 있을 것 같다. 이런 경험을 요약하자면, 대학원 과정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정전이 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규형 고려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