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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No royal way

[고대대학원신문_143] 공부론_나태함을 물리치고

by 앎의나무 2008. 3. 15.
나태함을 물리치고 열정을 식지 않게 하라
김성도│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인문학 공부를 한 지 25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해가 갈수록 학문의 세계는 태산처럼 점점 커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막 학문을 시작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공부하려는 겸허한 자세를 다짐해 본다. 자신의 학문 체계를 수립하여 전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는커녕, 여전히 배움의 문턱을 넘지 못한 필자에게 제자와 후배들에게 내놓을 공부의 비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필자보다 더 드넓은 학문적 경지에 오른 선배 석학들이 본교에만도 즐비한데, 나의 공부법에 대해서 논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는 일처럼 보인다.


효과적인 공부법은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 자신만의 리듬을 파악하라


거두절미하고 나는 효과적인 공부법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법을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거나, 체계적 논문 작성법 따위의 좁은 의미에서 해석하면 곤란하다. 공부법이란 말 그대로 연구자가 의당 구비하고 있어야 할 방법을 말한다. 이를 테면 그것은 학문 이라는 큰 바다 속에 있는 지식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촘촘한 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결코 모든 사람들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연구자 개인의 능력과 여건에 따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성격과 개인사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형식과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가장 정신 집중이 잘되는 연구자가 있는가하면, 또 어떤 이는 도서관의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더 효율적인 독서 효과를 맛보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개인적 일화를 들자면, 가장 책을 꿀맛처럼 맛있게, 그리고 거의 무아지경에서 읽는 경우는 일련에 한 두 차례 자료 수집 차 파리나 런던에 가서 원하는 책을 수 십 권 구입하여 곧 바로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이나 맥주 두 컵을 마시면서 다섯 시간 정도 책의 서론을 독파할 때이다. 이때의 독서 행위는 단순한 내용 입력이 아니라, 나의 사유가 전혀 다른 세계에 몰입하는 그야말로 오금이 저려오는 황홀경의 가상 세계이다. 공부법은 오직 ‘나’의 공부법이 있을 뿐이며, 그 어떤 석학이나 그 많은 수석들이 들려주는 공부법을 무리하게 자기 것으로 전유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 필자가 제시할 공부법의 제 1조는 자신의 생체 리듬을 파악하여 지적으로 가장 정신 집중이 잘되고, 또 공부하면서 가장 행복감에 빠지는 시간을 간파해서 그 시간대에 집중 투자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사항은 이 시간대는 대체로 3시간에서 많아도 5시간을 넘어서는 안 되며, 그 어떤 간섭으로도 빼앗겨서는 안 되는 양도 불가능한 절대적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가장 흠모하는 20 세기 최고의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명작 [신화지] 총 4권을 모두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연구하여 완성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새벽 시간대를 신화의 세계와 만나는, 현세의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 경험의 장으로 언급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토로하였다.


자신만의 체계적 정리법을 만들어라

내가 제시할 공부법 제 2조는 자신만의 체계적인 자료 정리와 노트 정리법을 만들라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 과잉 시대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자기만의 고유한 시스템 속에 담는 것은 필수적 요건이다. 유학 시절, 우연히 철학자 푸코가 프랑스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이라는 철학 교수 자격시험 준비를 위해 그가 육필로 정리한 노트를 본 적이 있다. 이 노트를 보면서 실망과 동시에 감탄했다. 그처럼 위대한 석학이 고시용 족집게 노트 같은 것을 만들어 놓은 속물(?)에 불과했다는 점에 실망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정리의 체계성과 치밀성에 감탄하면서 공부법의 실체의 한 단면을 엿보았던 셈이다.

공부법의 핵심은 결국 타인의 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핵심을 추려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있으며, 이같은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식 체계의 지도를 그려내는 데 있다. 여기서 필자가 석사과정 때 파리 대학에서 겪은 일화가 생각난다. 당시 필수 과목으로 노르망 교수의 언어학사를 수강했는데, 선생님은 고작 보름 정도의 시간을 주시면서 100쪽이 넘는 빅토르 앙리의 저서 [언어의 이율배반] (1908)을 정리하여 학부생들 앞에서 20 분 동안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하루에 10 시간씩 고군분투했으나 책의 핵심 내용 파악에 실패하여 발표는 엉망이었다.

필자가 지금도 그 교수님을 평생 은사로 여기는 이유는, 필자를 그저 외국인 학생으로서 배려하여 침에 발린 칭찬을 하지 않고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야단을 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의가 끝난 후, 당신의 정리법을 일러주셨다. 하양 백지 한 장과 연필을 갖고 오셔서, 백지를 삼등분하시면서, 책일 읽어가면서, 왼쪽에는 자신이 완전히 파악한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중간 부분에는 부분적 이해나 모호한 내용을 기입하고 세 번째 칸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정리해 둘 것을 주문하셨다. 이것은 그림으로 치면  소묘에 해당되는 것이며, 다시 두 번째 세 번째 독서를 하면서 만년필로 완전히 정리된 내용을 적어라는 당부도 하셨다. 나는 이 같은 공부법을 독서의 돈호법이자 점증법으로 풀이한다. 최소한 이렇게 하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섞어가면서 자신도 타인도 모두 혼동에 빠뜨리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전을 읽고 또 읽어라


나의 공부법 제 3조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건 고전을 읽고 또 읽는 것이 2 차 문헌 100 권보다 훨씬 더 ‘파워풀한’ 사유를 형성케 한다는 것이다. 고전에서 단어 하나 하나는 의미의 소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의 의미론적 밀도에 대해서 새삼 강조할 것이 없다.  이 같은 고전 섭렵에 효과적인 방법은 뜻을 같이하며 수준이 비슷한 학우들과의 강독을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점에서 이력이 날 정도로 경험이 많다. 학부 시절 방학 때면 세 네 개의 강독 모임을 조직하여 10 시간 넘게 오로지 고전 강독에만 할애한 적이 적지 않다. 그 때 선후배들과 다방에서 읽은 그라네의 [중국 사상], 라퐁텐느의 [우화집],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등, 약 100 여권의 원전은 필자의 인문학 공부에서 매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공부법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니 몇 개의 기술이 더 남아 있기는 하나,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 학문에 있어서 방법 보다 절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있으니, 나태함을 물리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엄정함과 정신적 기율, 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체력 관리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식도록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학문적 열정의 본질을 ‘에로스’로 파악한 퍼스의 탁견을 곰곰이 따져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