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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zing/Small is beautiful

진선미성

by 앎의나무 2006. 8. 28.

근대인은 자연을 파괴하는 생산체제와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사회를 건설했다.

생산 증대와 부의 획득이 근대 세계 최고의 목표가 되었으며, 다른 목표들은 모두 입에 발린 소리로만 대접 받을 뿐,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고의 목표는 정당화가 필요 없다. 허나 부차적인 목표는 그것의 달성이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정도에 비추어 정당화된다.

이것이 물질주의 철학이다. 그러나 전세계 그 어느 곳에서든지 간에, 이런 철학에 도전하며 다른 가치관을 주창했던 현자나 교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들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내세가 아니라, 그것들[각주:1]이 필요한 이곳 현세에서 바로 그것들을 추가로 얻게 될 것"이라고 배웠다

생산의 논리는 생명의 논리도 아니고 사회의 논리도 아니다. 생산의 논리는 생명/사회의 논리의 일부이자 거기에 종속된 것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따라야 할 우주법칙이 있지만, 생산양식과 소비양식이 이 법칙에 부합하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거대하면서도 복잡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오염에 대한 대처도 성공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필요한 만큼이면 충분하며 이 선을 넘어서면 악이라는 사고방식이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한, 자원 고갈 속도를 늦추거나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확보할 수 없다.

우리는아직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추구가 배후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오래된 가르침에서 이야기하는 덕목인, 지혜prudentia 정의justitia 용기fortitudo 절제temperantia로 나아가야 한다. 의미심장하게도 지혜는 모든 다른 덕목의 어머니ㅡprudentia dicitur genitrix virtutumㅡ이다.

지혜가 특히 중요하다는 것은 선[도덕적 선택=용기/절제]의 실현이 현실에 대한 객관성을 전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상황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 곧,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시 곧, 선의 실현은 우리의 행위가 현실에 적합하며, 현실을 현명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전제한다.

절제란 적절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지혜란 진리에 대한 인식을 현실에 부합되는 의사결정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좋은 의도]가 진리와 연결된다면,

용기[도덕적 선택]는 선과 연결되며,

절제[도덕적 선택]는 미와 연결된다.

지혜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나는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성]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후기>


  1. 생산 증대와 부의 획득 이외의 목표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