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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zing/Small is beautiful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2

by 앎의나무 2006. 8. 14.

#2 불교 경제학


노동의 본질이 적절하게 평가되고 적용된다면, 그것이 고상한 능력과 맺는 관계는 음식이 신체와 맺는 관계와 같아질 것이다. 일은 고상한 인간을 길러내고, 이런 인간에게 활력을 주며, 그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노동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적절한 방향에 따라 행사되도록 유도하며,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동물성을 길들여 좋은 길로 인도한다. 노동은 인간이 가치관을 보여주고 인격을 향상시키는 데 훌륭한 배경을 제공한다.

- J. C. Kumarappa


인간은 노동할 기회가 없으면 절망에 빠지는데, 이는 단순히 수입이 없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훈육된(diciplined)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활력을 얻는 측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질주의자는 물질에 관심을 보인다. 불교도는 주로 해탈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불교는 ‘중도’이므로 결코 물질적인 복지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다. 해탈을 방해하는 것은 부 자체가 아니라 부에 대한 집착이며,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탐하는 마음이다. 따라서 불교경제학의 핵심은 소박함과 비폭력이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불교도의 생활방식은 경이롭다. 왜냐하면 놀랄 만큼 적은 수단으로 아주 만족할 만한 결과를 산출할 정도로 대단히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근대 경제학자가 이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는 항시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적게 소비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전제 아래 연간 소비량으로 ‘생활 수준’을 측정하는 데 익숙하다. 허나 불교 경제학자에게 이런 접근은 너무도 비합리적인 것이다. (그들에게) 소비는 단순히 인간의 복지에 대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므로,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복지를 확보하는 데서 목적을 찾는다. ··· 가령 옷을 만들 때 천이 빨리 마모되도록 만드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짓이며, 추하거나 초라해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너무나 야만스러운 짓이다. 그 밖의 모든 필수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재화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일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불교 경제학은 최소한의 수단으로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다.

이와는 달리 근대 경제학은 소비를 경제 활동의 유일한 목적으로 여기며 토지, 노동, 자본 등의 생산 요소들을 그 수단으로 취급한다. 간단히 말해서, 불교 경제학이 적절한 소비 패턴으로 인간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데 반해, 근대 경제학은 최적의 생산 패턴으로 소비를 극대화하려 한다. 적절한 소비 패턴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은 최대의 소비를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소박함과 비폭력은 분명히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적절한 소비 패턴은 비교적 적은 소비로 높은 수준의 만족감을 제공하는 것으로 ··· 적은 자원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많은 자원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서로 다툴 가능성이 적다. 고도로 자급자족적인 지역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국제무역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대규모 폭력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다.

불교 경제학에 따르면, 지역의 자원을 이용해서 그 지역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경제 생활이다. ···

근대 경제학과 불교 경제학은 사회적 권리를 이용하는 데서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철학자인 주브넬(Bertrand de Jouvenel)은 ‘서양인’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는데, 이는 근대 경제학자에 대한 타당한 설명으로도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은 인간의 노력만을 지출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광물질을 낭비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생명체를 파괴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인간의 생명이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로 구성된 생태계의 일부라는 점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인간을 모든 비인간 생명체와 단절시키는 도시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생태계에 속한다는 느낌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물이나 나무처럼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들을 거칠고 경솔하게 취급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근대 경제학은 재생될 수 있는 물질과 재생될 수 없는 물질을 구분하지 않는데 ··· 불교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 재생될 수 없는 재화는 오로지 피할 수 없는 경우에만 이용되어야 하며 ··· 이러한 재화를 신중하지 않거나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 행위이다. 이 지구상에 완전한 비폭력이 달성될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비폭력의 이상을 지향해야 할 절대적인 의무가 있다.


··· [불교 경제학]은 ‘근대의 성장’과 ‘전통의 정체’ 사이에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물질주의자의 부주의와 전통주의자의 부동성 사이에서 올바른 발전 경로인 중도, 즉 ‘올바른 생활’을 발견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