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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

Baudouin De Courtenay 보두앵 드 끄르뜨네

by 앎의나무 2008. 3. 3.

Baudouin De Courtenay

-Phoneme이라는 개념에 빛을 던진 천재 언어학자-

by 현주(All rights rese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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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음운론 개론서들에서 언급되는 이름들에는 N. S. Trubetzkoy, F. Saussure, E. Sapir, L. Bloomfield, D. Jones 등이 있는데, 이들과 더불어 Baudouin De Courtenay의 이름도 몇 줄 정도는 빠지지 않고 기술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업적에 비해 그의 이름은 그만큼 자세하고 자주 언급되지 않고 있다.


Courtenay는 보통 음소라는 개념이 언어학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학자들 사이에서 자리매김해 가는 과정에서 '소리의 심리적 대당자(equivalents psychologique des son)'로서의 개념을 상정한 학자로 기술되며 간단하게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Courtenay는 음운론이라는 언어학의 한 영역이 성립하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 학자이고 형식상 Saussure가 음운론에서 갖는 만큼의 무게를 음운론에서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아래에서 Courtenay의 업적에 대해 기존 학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며, 그의 업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



역사적 배경


당시의 유럽은 진화론, 원자주의, 심리학 등 현대문명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는 자연과학의 기본적 아이디어들이 여기저기서 꽃을 피우던 시기이다. 진화론의 영향 아래 역사언어학이 있다는 것이나 원자주의의 영향 아래 소리의 최소단위인 음소에 대한 논의가 일어난 점 등은 이제는 상식이 된 역사이다. 코펜하겐 학파의 대수적 정의가 이 관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원자 그 자체가 아니라 원자들의 구조 즉 분자가 물질의 특성을 결정짓는다는 과학사 상의 발견과 나란하게 언어학에서도 음소들은 그 자체가 아니라 음소들의 기능과 역할 혹은 체계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다. 바야흐로 언어학에서는 소위 기술구조주의 시대가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20대의 중반의 Courtenay는 당시 러시아의 St. Petersburg 대학에서 강의를 맞고 있었다.



소장문법학파와 Prague 학파, 그리고 Kazan 학파.


Leipzig를 중심으로 하는 소장문법학파가 본격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 1870년대 말의 일이므로, Courtenay가 활동하던 시기인 19세기 후반은 소장문법학파가 어느 정도 안정하게 자리를 잡은 시기이다.


폴란드 출신의 이 천재 언어학자가 음소를 최초로 언급한 것은 그가 St. Petersburg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1870년, 그의 나이 25세 때의 일이다.1) 이렇게 Courtenay를 중심으로 한 St. Petersburg 대학 언어학자의 무리를 까잔(Kazan) 학파라고 한다.


그의 여러 저술들에서 소장문법학파들과 같은 생각을 엿볼 수 있어 그가 알게 모르게 소장문법학파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Jakobson :1978). 또한 '의미를 구별하는 데에 사용되는 소리의 특징'인 Kazan학파의 음소개념은 이미 프라하학파에 잘 알려져 있었던 점2)이나, Courtenay가 처음으로 주창한 음성과학과 음소과학의 준별3)이 Trubetzkoy에 이어지는 점 등으로 미루어4), Kazan학파가 Prague학파에 일정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음소와 관련하여


그는 변별되는(differentiating) 소리로서의 음소(phoneme)라는 개념과 음소5)라는 용어를 최초로 언급한 언어학자이다. 비록 다른 학자들이 변별되는 소리로서의 음소라는 개념을 이미 갖고 있었다고 해도, Courtenay가 공식적으로 음소를 언급한 것이 1893년이란 점으로 미루어 그도 음소의 개념에 대해선 비교적 빨리 음소의 개념을 논했던 Henry Sweet보다 시기적으로 뒤지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음소의 개념을 언급한 것은 소장문법학파가 여전히 성장 중이었던 1870년 그의 나이 25세 때의 일이다.


Courtenay는 이는 앞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소리의 발동과 전달이라는 측면을 소리의 역할과 그 소리에 할당되는 의미의 측면으로 나눠볼 것을 강조했다. 즉 음성학과 음운론을 나눌 것을 선언한 것이다. 조음음향적인 소리의 특징과 어휘적․문법적 역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삼는 etymological phonetics6)를 제안한 것이 그것이다.



심리주의의 영향


또한 당시 유럽의 지성사는 심리주의가 풍미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러 언어학자들은 이 심리주의의 영향으로, Courtenay가 자신이 25세에 주장했던 음소의 개념을 후에 심리적인 개념으로 완전히 교체했다고들 말한다.


보통은 Courtenay가 1894년에 와서 음운의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기 위한 그때까지의 음성학적인 원리를 포기하고 대신 심리주의적인 증거를 찾는 쪽으로 기울어졌다.(Milka Ivić : 1965)고 음운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기술하고 있다.


Courtenay의 이런 경향은 E. Sapir에게도 영향을 줘 Sapir의 저술 『Sound Patterns in Language』에서는 "음소적 현상이란 물리적인 지식을 전제로 하지만 그 자체가 물리적인 현상은 아니다. 음소란 어떤 주어진 음이 그것이 속하는 언어 전체 구조 속에서 다른 음과 갖게 되는 관계 즉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aloofness)의 의해 파악된다."라고 했다.7)


그러나 Courtenay가 주창한 etymological phonetics를 대체하게 되는 psychophonetics도 그 핵심은 그가 심리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임을 알려준다. phychophonetics를 통해 그는 시종 변별적인 기능의 개념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리 변별의 핵심을 찾는 데에 즉 음소자체의 별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디 언어적이고 실재하는 음소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정신적인 영역에 투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소리의 심리적 대당자로서의 음소의 존재가 가능하다고 논했다8). 바로 이점에 있어 초창기의 etymological phonetics와 달라진 것이다.



맺음말


현대 음운론에서 이해하는 음소의 관점에서 Courtenay가 후기로 가며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음소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심리주의적인 관점에 지나치게 의존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음소의 개념에 있어 문법적 혹은 어휘적인 면에서 음소가 지니는 변별적인 가치를 중시한 B. D. Courtenay의 선언은 매우 중요하다.


Saussure에 의해 제안된 '음소들이 갖는 체계'에 대한 이해와 Courtenay에 의해 확립된 '의미변별의 역할을 하는 음소의 지휘' 발견이 현대음운론을 탄생 시킨 씨실과 날실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목록>


Milka Ivić.『Trends in Linguistics』, 1962. (김방한 역. 『언어학사』, 1985.)

Roman Jakobson. Six Lectures on Sound and Meaning, MIT Press. 1978.

R. H. Robins. 『A Short History of Linguistics』, Longman Linguistics Library, 1997.

오정란.『현대국어음운론』, 형설출판사, 1997.

이기문 외 2인. 『국어음운론』, 학연사. 2001.

김형엽. 『인간과 언어-언어학을 통해 본 서양철학』, 한울아카데미, 2001.



1) Roman Jakobson, Six Lectures on Sound and Meaning, MIT Press, 2nd Lecture.

2) Milka Ivić,『Trends in Linguistics』1962. (김방한 역 『언어학사』, 1985).

3) 비록 순수하게 심리적 관점이긴 하지만, 음성과학은 생리음성학(physiophonetique)이고, 음소과학은 심리음성학(psychophonetique)이라고 하여 최초로 음성학과 음운론의 구분을 언급하고 있다(이기문 외 2인,『국어음운론』, 2001.) .

4) 김형엽, 『인간과 언어』한울아카데미, 2001.

5) 음소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명확하게 기술한 것은 1893년의 일이며 러시아 문자로 'foneme'이라고 기술했다. (R. H. Robins, 『A Short History of Linguistics』, Longman Linguistics Library, 1997, chap 8.)

6) 물론 이후 Courtenay가 심리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psychophonetics로 대치된다.

7) 오정란,『현대국어음운론』, 형설출판사, 1997.

8) 이에 대해 Jakobson( )은 당대의 눈과 자신의 눈을 속이기 위한 위장이고 이것 때문에 결국 Courtenay는 자신의 위대한 발견을 계속하야 개발해 나갈 수 없었다고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