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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zing

나의 아저씨 감상 후기

by 앎의나무 2020. 6. 15.

경미한 근육통과 인후염이 가시지를 않아 주말을 쉬었다.
지겨움을 덜어내려고, 눈을 감고 쉬면서 귀로 들어도 스토리를 좇을 수 있는 한국 드라마를 하나 몰아서 보기로 했다.

마침 넷플릭스 추천에 #나의아저씨 가 떠 있어 보기로 하였다.

1. 괜한 걱정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46(?)세의 박동훈(이선균 분)과 상처 투성이에 고슴도치처럼 모두에게 공격적인 21세의 이지안(이지은 분)이 두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때, 이 둘의 로맨스가 줄기인가 싶어 잠시 눈쌀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는 1화부터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만들었다.

2. 큰 줄기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 존경하는 것, 의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지안이 동훈을 통해 이런 것을 배우며 사람답게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인격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자, 내적인 갈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려고 하는 동훈이 지안의 어려움과 상처를 꿰둟어 보고 성숙할 수 있게 이끌어 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자기자신을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지안은 다양한 인간관계, 특히 따듯한 인간관계들을 모른다. 그래서 동훈에 대한 감정이 초기에 분화가 안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문회 때 '좋아한다, 존경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존경'의 '호감'이 분화했음을 알 수 있다.


3. 측은과 수오 
박동훈을 보면, 부모형제가 1순위, 친구가 2순위, 집사람이 3순위인 듯 행동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냥 약자일수록 더 의협심이 발휘되는 동네 형 스타일이다. 이지안의 범죄를 도와준 고물상 할아버지께 어려운 형편에 더 형편이 어려운 지안을 도와 온 점에 대해 '존경한다'고 말하거나, 대표가 지안에게 속아 피해를 입은 상황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걸 동훈에게 설명하는 것에 아랑곳 않고 대표에게 주먹을 날리거나 한다. 동훈에게 시비지심은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보다 아래다.

4. 열린 꼰대 
박동훈의 말투나 행동에서 보이는 약간의 꼰꼰함이 40대 중후반 세대를 잘 보여준다. 자기를 뒤에서 욕한 부하직원의 사죄 전화에 '죄송합니다 10번'이라며 짜증과 경멸을 담아 명사문으로 명령하고, 상갓집에서 웃으며 술을 주고 받는 부하직원들에게 '지금 술집 왔지?'라며 설의문으로 경고하고, 감정을 진솔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투의 분위기는 내 기억에 2000년 전후 하여 다녀온 군대에서 경험한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왜 저렇게까지 말하나 싶다가도 몇 년 위의 대학 선배들이나 군대에서 겪은 선임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97학번은 안 그런 거 같은데. 나는 안 그럼ㅎㅎ

5. 마지막 Scene ('신'으로 적기는 어색하다.)
유튜브 클립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마지막 장면이 둘의 로맨스를 암시한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악수는 동훈이 드라마 중 약자가 아닌 사람들, 아프지 않은 사람들, 아픔을 이겨낸 사람들, 성숙한 인격을 대하는 방식이다. 즉 악수는 동등하다는 것, 여기서는 지안도 나처럼 편안함에 이르렀다는 것, 딱 그것이다. 이 장면에서 연애를 연상하는 것은 그간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문법'에 익숙해진 신경계에 의한 환유/연상일 뿐.

6. 마무리
주위에 괜찮은 '어른'이 한 명만 있어도 미성숙한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

+ 괜찮은 '어른'은 힘들고도 멋지다. 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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