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umanizing

성경의 윤리 - 이기심과 보복과 죄

by 앎의나무 2008. 7. 5.

레니 브루스(Lenny Bruce)는 이를 제대로 꼬집었다 "만일 예수가 20년 전에 죽었다면, 가톨릭 신자들은 목에 십자가 대신 작은 전기의자를 걸고 다닐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는 신학과 처벌이론은 더 고약하다. 아담과 이브의 죄는 부계르 따라전달된다고 여겨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액으로 전달된다고 보았다. 모든 아이들, 심지어 태어나기 전의 아이들까지 까마득히 먼 조상의 죄를 물려받는다고 주장하는 윤리철학으느 대체 어떤 것일까? 이왕 말하는김에, 스스로 죄에 관해 일가견이 있다고 여겼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 '원죄'라는 말을 만든 인물이다. 그 이전에는 그것을 '조상의 죄'라고 했다. 이는 초기 신학자들이 죄에 병적으로 몰두했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 산맥과 초록빛 숲, 바다와 새들의 아침 합창을 찬양하는 저술과 설교 활동에 몰두할 수도 있었다. 이따금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기독교 인들은 압도적으로 죄 죄 죄 죄 죄 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역겹고 사소한 것에 몰두하느라 인생을 낭비하다니. 샘 해리스는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에서 아주 통렬하게 혹평을 한다. "당신들의 주된 걱정거리는 우주의 창조자가 인간들이 벌거벗었을 때 한 일에 여전히 화를 낼 것이라는 점이다. 당신들의 이 소심함이 매일 인간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379-380

 

많은 사람들은 가롯 유다의 '배신'이 우주적 계획의 필수적인 일부였음에도 그가 역사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예수의 살인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예수가 우리 모두를 대속하기 위해 배신당하고 처형당하고 싶어 했다면, 속죄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유다와 유대인들에게 보복한다는 것은 좀 부당하지 않을까? 근래에 발견된 유다복음은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것은 오로지 예수가 그 역할을 맡으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부 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함으로써 인류가 대속할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의 일부였다. 그 교리도 못마땅하지만, 유다가 그 뒤로 죽 비난을 받아왔다는 점도 불쾌함을 심화시킨다. 380-381

 

기독교인들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양쪽에서 권하는, 타인에 관한 도덕적 내용들의 상당수가 원래 협소하게 정의된 내집단만을 고려한 것이었음을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다"라는 말은 원래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다른 유대인으르 사랑하라"는 뜻이었다. 미국의 의사이자 진화인류학자인 존 하텅은 그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그는 성서에서 말하는 내집단 도덕의 역사와 진화를 다룬 놀라운 논문을 썼는데, 그 이면에는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이 깔려 있었음을 강조한다. 383

2008/07/05 - [Humanize] - 악행과 종교의 상관관계

<만들어진 신> 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