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227쪽)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정서의 기초가 되는 도파민이나 세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최초의 척추동물까지 올라갈 만큼 오래된 것이다. 커다란 전전두피질을 지닌 인간의 경우, 성찰적 사고의 능력이 꼭대기에 얹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도구를 속여 넘기는 쿨루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 추론을 통한 의사결정에 대한 사실상 모든 연구는 이 능력이 전전두피질에 위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정서는 변연계와 안와전두피질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한층 개조된 인간과 유인원의 뇌에서 발견되는 전대상이라는 지점은 이 둘을 중개하는 듯하다. 신중한 전전두 사고는 자동적인 정서적 느낌들의 꼭대기에 얹혀 있을 뿐, 이것들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 우리의 원초자아(id)는 우리의 자아(ego)와 끊임없는 갈등 속에 있으며, 우리의 단기적 욕망은 우리의 장기적 욕망과 결코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
이 분열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춘기의 십대들이다. 십대들은 단기적 보상에 거의 병적으로 사로잡힌 종처럼 보인다. 십대들은 부수적 위험에 대해 비현실적 평가를 내리며 장기적 비용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 연구에 따르면 보상을 평가하는 중격의지핵은 장기 계획과 신중한 추론을 인도하는 안와전두피질보다 먼저 성숙한다. 이렇게 볼 때 십대들은 단기 이익을 평가하는 데에선 성인의 능력을 가지고 장기 위험을 인식하는 데에선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진화의 관성이 현명한 설계보다 우선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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