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이 과연 우리의 안내자일까.
언뜻 보면 답이 분명한 듯하다. 표준적 답은, 행복이 부분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 이것은 우리가 접하느 모든 것들을 항상 그리고 자동적으로 좋은 것 또는 나쁜 것으로 범주화함을 뜻한다. ; 이런 종류의 자동 평가는 주로 반사체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상당히 정교하게 작동한다. ;
우리는 다른사람들을 필요로 할수록 그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한 표현을 잠재의식의 고나점에서 약간 냉소적으로 바꿔 말하자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친구는 우리가 이미 친구로 지각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선조들에게 좋은 것이었음에 틀림없다."라는 단순한 생각은 금방 곤란에 처한다. 우선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 주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유전자를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평균적인 성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1/3을 텔레비젼, 스포츠, 친구와 술 마시기 같은 여가활동에 소비한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직접적인 유전적 이익이 거의 없는 것들이다. 섹스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경우에 번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가를 위한 것이다. 내가 요즘 즐겨 찾는 레스토랑인 '스시 삼바'에서 한 끼 식사에 100달러를 쓰면, 그것으느 내 자식들의 수르르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도 아니고, 페루와 일본의 퓨전음식을 먹는 것이 내 배를 채우는 가장 싼 (혹은 가장 영양이 풍부한) 방법이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까닭은 내가 황조어 세비체의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의 관점에서, 당연히 나의 정찬 계산서는 명백한 재정적 자원의 낭비이다.
후회하면서 습관적으로 TV를 보는 사람들 ; 담배가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 ;
중독은 사람을 환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일단 그 길에 들어서면, 순간의 결정이 장기적으로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든, 순간의 행복의 함정에 빠져 자신의 결정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허술한 쾌락 탐지기와 폭넓게 조율된 쾌락 체계
쾌락은 서투른 마음에 동기를 유발시킨다.
대부분의 쾌락은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의 영향 아래 있다.
반사 체계는 근시안적인 편이며, 숙고 체계와 갈등이 생길 땐 반사 체계에 무게가 쏠린다. 실제로 내가 이 크렘브룰레를 먹기를 삼간다면 약간의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만족감은 내가 그것을 먹어서 얻는 순간적인 희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으로 느껴진다.
내 유전자에게는 내가 디저트를 먹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 그러나 이 유전자도 나의 뇌가 이전 시대의 유뮬인 동물적인 부분을 일관되게 이겨낼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다.
쾌락중추는 의외로 잘 속여진다.
과일에는 당이 들어 있으며 포유동물은 당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우리가 과일에 대한 '기호'를 가지도록 진화했다는 것은 사리에 맞는다. 그러나 이 당을 감지하는 시스템은 진짜 과일과 영양은 없고 맛만 유사한 합성 과일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한다. 우리 인간들은 쾌락 중추를 속일 수 있는 수천 가지 방법을 찾아 냈다.
섹스; 폭넓게 조율된 쾌락 체계를 따른다.
우리가 쾌락을 탐지하는 데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정신적 기제들도 조야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쾌락 탐지기는 우리의 유전자에별로 기여하는 것이 없는 수많은 다른 자극들에도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가 섹스를 한껏 즐길 수 있는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섹스를 즐기도록 만드는 기제가 이씩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제는 섹스가 출산으로 어이지거나 연애 중인 커플의 결속에 기여할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작동한다. ; 우리가 유전자의 번식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기여하는 일 없이 섹스를 할 때마다 우리의 유전자는 바보 취급을 당하는 셈이다.
우리의 정신적 기제의 상당 부분은 (쾌락의 대리물인) 보상을 평가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기제의 사실상 모든 부분은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것보다 더 넓은 범위의 선택을 허용한다. 설탕을 마음껏 즐기는 행동이나, 뜨거운 퍼지 아이스크림선디는 우리가 칼로리를 필요로 하든 안 하든 거의 언제나 쾌감을 선사한다.
인터넷 중독; 정보의 탐식.
비디오 게임; 허술한 쾌락 탐지기를 파고들다. 숙달과 연합된 희열을 최대한 빈번하게 제공하도록 설계된 게임은 기술 습득의 자연스러운 보상 과정에 대한 과상 변형이다.
행복을 속이다
로이트라면 모든 자기기만을 '방어기제'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실은 모두 동기에 의한 추론이다. ; 우리는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일단 실해하면 우리는 언제나 거짓말하고 감추고 합리화할 수 있다. ; 무하마드알리가 "나는 챔피언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진리를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을, 또는 적어도 우리의 행복 온도계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인지 부조화와 자기 기만적 행복
행복이 우리를 이끌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우리의 안내자를 미세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일단 세상에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그러나 진리가 우리 편이 아닌 때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테세를 갖추고 있다. ; 이런 자기기만의경향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대해서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게끔 만들 수 있다. ; 사람들이 부당한 세계보다는 정의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런 믿음은 극단적인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무고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과 같이 아주 야비한 행동까지 하도록 만들 수 있다. ; 좀 더 현명하게 설계된 로봇이 있다면 그 로봇에게는 신중한 사고의 능력은 있되 이 모든 합리화와 자기기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로봇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의식하고 그것이 좋드느 나쁘든 그것으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망상보다는 현실에 입각한 행동을 선택할 것이다.
언뜻 보면 답이 분명한 듯하다. 표준적 답은, 행복이 부분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 이것은 우리가 접하느 모든 것들을 항상 그리고 자동적으로 좋은 것 또는 나쁜 것으로 범주화함을 뜻한다. ; 이런 종류의 자동 평가는 주로 반사체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상당히 정교하게 작동한다. ;
우리는 다른사람들을 필요로 할수록 그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오래된 한 표현을 잠재의식의 고나점에서 약간 냉소적으로 바꿔 말하자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친구는 우리가 이미 친구로 지각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선조들에게 좋은 것이었음에 틀림없다."라는 단순한 생각은 금방 곤란에 처한다. 우선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 주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유전자를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평균적인 성인은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1/3을 텔레비젼, 스포츠, 친구와 술 마시기 같은 여가활동에 소비한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직접적인 유전적 이익이 거의 없는 것들이다. 섹스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경우에 번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가를 위한 것이다. 내가 요즘 즐겨 찾는 레스토랑인 '스시 삼바'에서 한 끼 식사에 100달러를 쓰면, 그것으느 내 자식들의 수르르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도 아니고, 페루와 일본의 퓨전음식을 먹는 것이 내 배를 채우는 가장 싼 (혹은 가장 영양이 풍부한) 방법이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까닭은 내가 황조어 세비체의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의 관점에서, 당연히 나의 정찬 계산서는 명백한 재정적 자원의 낭비이다.
후회하면서 습관적으로 TV를 보는 사람들 ; 담배가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 ;
중독은 사람을 환락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일단 그 길에 들어서면, 순간의 결정이 장기적으로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든, 순간의 행복의 함정에 빠져 자신의 결정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허술한 쾌락 탐지기와 폭넓게 조율된 쾌락 체계
쾌락은 서투른 마음에 동기를 유발시킨다.
대부분의 쾌락은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의 영향 아래 있다.
반사 체계는 근시안적인 편이며, 숙고 체계와 갈등이 생길 땐 반사 체계에 무게가 쏠린다. 실제로 내가 이 크렘브룰레를 먹기를 삼간다면 약간의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만족감은 내가 그것을 먹어서 얻는 순간적인 희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으로 느껴진다.
내 유전자에게는 내가 디저트를 먹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 그러나 이 유전자도 나의 뇌가 이전 시대의 유뮬인 동물적인 부분을 일관되게 이겨낼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까지 내다보지는 못했다.
쾌락중추는 의외로 잘 속여진다.
과일에는 당이 들어 있으며 포유동물은 당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우리가 과일에 대한 '기호'를 가지도록 진화했다는 것은 사리에 맞는다. 그러나 이 당을 감지하는 시스템은 진짜 과일과 영양은 없고 맛만 유사한 합성 과일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한다. 우리 인간들은 쾌락 중추를 속일 수 있는 수천 가지 방법을 찾아 냈다.
섹스; 폭넓게 조율된 쾌락 체계를 따른다.
우리가 쾌락을 탐지하는 데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정신적 기제들도 조야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쾌락 탐지기는 우리의 유전자에별로 기여하는 것이 없는 수많은 다른 자극들에도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가 섹스를 한껏 즐길 수 있는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섹스를 즐기도록 만드는 기제가 이씩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제는 섹스가 출산으로 어이지거나 연애 중인 커플의 결속에 기여할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작동한다. ; 우리가 유전자의 번식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기여하는 일 없이 섹스를 할 때마다 우리의 유전자는 바보 취급을 당하는 셈이다.
우리의 정신적 기제의 상당 부분은 (쾌락의 대리물인) 보상을 평가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기제의 사실상 모든 부분은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것보다 더 넓은 범위의 선택을 허용한다. 설탕을 마음껏 즐기는 행동이나, 뜨거운 퍼지 아이스크림선디는 우리가 칼로리를 필요로 하든 안 하든 거의 언제나 쾌감을 선사한다.
인터넷 중독; 정보의 탐식.
비디오 게임; 허술한 쾌락 탐지기를 파고들다. 숙달과 연합된 희열을 최대한 빈번하게 제공하도록 설계된 게임은 기술 습득의 자연스러운 보상 과정에 대한 과상 변형이다.
행복을 속이다
로이트라면 모든 자기기만을 '방어기제'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실은 모두 동기에 의한 추론이다. ; 우리는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일단 실해하면 우리는 언제나 거짓말하고 감추고 합리화할 수 있다. ; 무하마드알리가 "나는 챔피언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진리를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을, 또는 적어도 우리의 행복 온도계를 속이고 있을 뿐이다.
인지 부조화와 자기 기만적 행복
행복이 우리를 이끌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우리의 안내자를 미세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일단 세상에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그러나 진리가 우리 편이 아닌 때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테세를 갖추고 있다. ; 이런 자기기만의경향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대해서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게끔 만들 수 있다. ; 사람들이 부당한 세계보다는 정의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런 믿음은 극단적인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무고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과 같이 아주 야비한 행동까지 하도록 만들 수 있다. ; 좀 더 현명하게 설계된 로봇이 있다면 그 로봇에게는 신중한 사고의 능력은 있되 이 모든 합리화와 자기기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로봇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의식하고 그것이 좋드느 나쁘든 그것으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망상보다는 현실에 입각한 행동을 선택할 것이다.
'Humanizing > Kluge_Gary Marc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완전함을 통찰하라 (0) | 2009.03.19 |
---|---|
심리적 붕괴 (0) | 2009.03.19 |
진화의 관성 (0) | 2009.03.19 |
언어의 반사체계와 숙고체계 (0) | 2009.03.19 |
오염된 신념 (0) | 2009.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