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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zing

나무열매

by 앎의나무 2007. 1. 17.

드높은 우듬지에
푸르고 큼직한 과실이 한 개
현지의 젊은 애가 쭈르르 나무를 타고 올라
손을 뻗치려 하다가 굴러 떨어졌다
나무 열매로 보였던 것은
이끼 낀 한 개의 촉루이다

민다나오 섬
26년의 세월
정글의 조그만한 나뭇가지는
전사한 일본 병사의 해골을
어쩌다가 슬쩍 걸쳐서
그곳이 눈구멍이었던가 콧구멍이었던가도 모른 채
젊고 튼튼한 한 그루의 나무로
거침없이 성장했던 것이다

생전
이 머리를
소중하게 귀여운 것으로
끌어안았던 여자가 물론 있었을 테지

어린 관자놀이의 숫구멍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분은 어떤 어머니
이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정답게 끌어안던 이는 어떤 여자
만일 그 여자가 나였더라면······

절규하고 그대로 1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금 草稿를 꺼내
메워 두어야만 할 縱行 찾아내질 못해
다시 몇 년인가 지나가는구나

만일 그 여자가 나였더라면······이 다음에 이어져야 할 一行을
결국 세워두질 못한 채


이바라기 노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