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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Keller

기호와 언어

by 앎의나무 2008. 4. 24.
2007, 4월. 김현주,

 들어가며


 Laver(1994)1)의 1장 제목은 “The semiotic framework”이다. 1장에서 저자는 기호학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언어에 접근하고 있다. 본문을 요약하고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겠다.



 요약


1. 기호학

기호학은 “의사소통에 소용되는 기호 체계”의 모든 양상을 취급한다. 의사소통에 소용되는 기호 자체만이 아니라, 시·청각적 의사소통 경로를 통해 기호가 생산되고 지각되는 기제에 대해서도 기호학은 고려한다. 또한 특정한 기호의 사용·생산이, 기호 생산자의 특성에 대한 정보를 지니게 되는 점에도 관심을 가진다.(밑줄, 따옴표 - 발제자, 이하 동일.)

 대화 참여자 사이에 정보가 지속적으로 교환된다. 말(speech)의 작동 원리를 논하기 위해서 편리한 기호학적인 틀을 세우는 첫 단계는 교환되는 정보를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다.


2. 세 유형의 정보

 의미론적(semantic) 정보: 말해진 발화(spoken utterance)의 의미로, 명제적 내용을 가리킨다. 그러나 명료한 의미론적 정보는 종종 다른 수단으로 치환된다. “이리 와”라는 잠재적 발화(potential utterance)에 대당하는 의사가 손짓으로 오해 없이 소통될 수 있다.

 확인적(evidential) 정보: 기호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는 의미론적 정보 외에도 화자의 여러 속성에 대한 정보도 포함된다. 입말을 통해 1) 성별·나이·건강 같은 화자의 물리적 특성을 알 수 있고, 2) 사회적 인정, 사회적 지위나 교육의 정도, 직업 등의 사회적 특성도 알 수 있고, 3) 기분이나 상태, 개인의 인성에 대한 심리적 특성도 확인할 수 있다.

 조정적(regulative) 정보: 화자와 청자라는 대화 상황의 역할 맡기에 대한 정보를 가리킨다. 조정적 정보를 표현하는 방식은 사회 개별적이다. 대체로 발달의 늦은 시기까지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학습된다.


3. 말소리 행위(vocal behavior)와 말소리 이외(non-vocal)의 행위

 청자는 대화에서 앞서 밝힌 세 가지 정보를 화자로부터 지각한다. 말(speech)에 대한 분석은 이 셋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대화는 말소리 행위로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말소리 행위와 더불어 양방향의 정보 교환이 시각적 경로로도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대화에서는 제스처, 자세, 머리의 움직임, 몸짓, 표정, 응시, 눈맞추기 등이 말 행위를 보충하면서 계속된다. 이런 행위들은 말에 대한 연구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역시 말소리 행위처럼 부호화된 의사소통 체계의 요소로, 말이 핵심인 의사소통 맥락에 대한 연구에서는 통합된다.”


4. 語句的(verbal) 행위와 非語句的(non-verbal) 행위

 verbal과 non-verbal에 대한 정의는 각양각색이다. 여기에서는 말소리 행위 가운데, 구어의 단위로서 개별 단어를 확인시키는 구실을 하는 것을 어구적(verbal) 요소라고 정의하고 그 밖의 말소리 행위 요소를 비어구적 요소라고 정의한다. 어구적 요소로는 ‘단어 강세’, 모음과 자음 등이 포함되고 비어구적 요소로는 문장 전체에 걸리는 억양, 강조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강세, 어조 등이 포함된다.


5. 기호(signs)와 상징(symbols)

 퍼스(Charles Peirce)에 의하면 기호에 대한 형식적인 원칙은 ‘기호는 어떤 능력 혹은 관점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위한 것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사람’, ‘개체’, ‘개체를 지시하는 데 사용되는 기호’ 사이에 세 방향의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개체와 기호 사이의 지시 관계(referential relation)는 자의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의성적 기호는 자의적이지 않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에 소용되는 그런 기호는 극소수이다. 언어학적 기호들은 자의적이다. 이런 기호를 상징적 기호라고 한다. 상징은 사회적으로 고안된 것이고, 지시체와의 관계가 자의적이다.

 단어는 상징적 기호이다. 기호학적 지위는 분명하다. 그러나 단어를 구성하고 한 단어를 다른 단어와 변별해주는 자음과 모음의 기호학적 지위는 덜 분명하다. 이 점에 있어서, 개별 자음·모음과 그것의 실제로 발음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발음의 행위를 말-소리(speech-sound)로 편의상 부르기로 하면, 기호학적으로 ‘말-소리’가 자음·모음을 상징하고, 자음·모음은 언어적 부호의 추상적 요소라는 지위를 지닌다.


6. 언어 부호의 이중(dual-level) 구조

 매우 다른 상징화의 두 층위의 결합이 언어를 기호학적으로 독특하게 만든다. 문법 층위가 상부 층위이고 음운론 층위가 하부 층위이다. 문법 층위의 단위들은 의미 세계에 외부적 지시를 가질 수 있는 단위로 구성된다. 말-소리는 관련 언어에 있는 추상적 음운 단위를 지시한다. 물론 음운론 층위는 음절, 억양 같은 초분절 요소도 포함한다.


7. 형식(form)과 실체(substance)

 가변성(variability)과 패턴은 구어 지각에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다. 구어가 가변적이라고 해도, 청자는 포함된 음운 단위들이 확인되는 변별적 패턴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관련되는 변별 패턴이 모든 충족되어 표상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활에서 말의 실체에는 유의미한 패턴이 다소 소멸되어 나타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고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에는 장애가 거의 없다.


    She sh---d --v- giv-n -im the package : 축약된 발화

    She should have given him the package : 전문


패턴은 이상적 상황에서 가정되는 추상적 개념이다. 실제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 패턴은 물리적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형식(form)은 언어 단위의 대표형으로서의 패턴을 나타내고 실체(substance)는 언어적 패턴이 구체화되는 매체와 관련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종종 음운론은 구어의 형식에 대한 연구라고 일컬어지고 음성학은 구어의 실체에 대한 연구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는 둘 다 형식과 실체에 관계하며, 다만 초점이 다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8. 부호(code)와 매체(medium)

부호는 물리적 매체에 의해 구체화된다. 청자는 그런 구체화된 발화의 실체라는 가공물에서 이용 가능한 변별 패턴에 집중하여 부호를 해독하기도 하지만, 어휘 선택의 확률 등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해독하기도 한다. 쓰기라는 사건이 쓰여진 매체라는 인공물인 것처럼, 말이라는 사건은 ‘말해진 매체’라는 인공물이다. 인공물이므로 확인적인 정보도 가지고 있다. 이런 확인적 정보에는 가공물을 만드는 데 소용된 도구(성도 등)의 종류와 그 가공물을 만든 장인(화자)의 개인적 스타일도 포함된다.


9. 의사소통(communicative) 행위와 정보알림(informative) 행위

 수신자에게 알리고자 한 발신자의 분명한 의도를 가지는 것이 기호의 의사소통적 측면이고, 발신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수신자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경우 이는 기호의 정보알림의 측면이다.2)


10. 언어적(linguistic)·부분언어적(paralinguistic)·언어외적(extralinguistic) 행동

 말에서 언어적 행동은 음운·문법 단위로 구성된 구어의 이중적 부호를 사용하는 행동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수화나 문자로 된 언어행동도 있지만, 전체 언어 행위 중에 극히 적은 부분이다. 부분언어적 행동이란, 비언어적이고 비어구적(non-verbal)이지만, 청자에게 화자의 현재 감정, 태도 등을 알리고 대화의 역할 등에 대한 조정적 정보를 알리는, 부호화된 행동이다. 부호화된 의사소통 유형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언어 부호와 동일하지만, 순차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나, 비어구적 요소가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난다. 말에서 언어외적 행동은 부호화된 모든 언어적·부분언어적 측면에 대한 분석을 하고 남은 부분이다. 부호화되지 않은, 말의 언어외적 측면은 종종 풍부한 확인적 정보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확인적 정보가 언어외적 측면에 의해서만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11. 음성학의 영역

 음성학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접근은 구어의 기술을 주제 영역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책은 더 넓은 기호학적 관점을 촉구한다.



 나가며


 저자는 기호학적 틀로 언어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준과 구분을 제시하였다. 덕분에 발표자는 언어의 본질이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점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으며,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상당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어 제시해 본다.

 “휴게소 1.2Km” 같은 고속도로 표지판, 화장실 문에 쓰여 있는 “男” 혹은 “女”,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큰 활자들(제목), 자판에 붙어 있는 “ㄱ”, “ㄹ”, “ㅎ” 같은 기호들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기호들이 각각 {길을 따라 1.2Km를 더 가면 휴게소가 있다}, {남성용 화장실로 통하는 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XXX이다}, {이 자판을 누르면 화면에 ‘ㄱ’이 나타난다}를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이는 사회화 과정에서 배워야 한다. 이런 점은 상징 기호인 ‘일반적’ 언어와 다르지 않다.

 그러면 글로 쓴 기호로서 “이”, “1”, “眞”, “∴”는 언어적 기호인가? 저자는 언어가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특수한 기호라고 하였는데, 글의 말미에서는 문어나 수화도 언어적 행동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곧, 말소리를 ‘지시’해야만 언어적 기호인가, 그렇다면 표의 문자는 언어적 기호가 아닌가. 만약 표의 문자가 언어적 기호라면, 수학적 정리라는 맥락에서 /곱하기/로 읽히는 “×”도 언어적 기호인가? 마찬가지로 “∴”는 수학적 정리라는 특정한 맥락에서 그 맥락에 관계하는 화자들에 의해 /그러므로/ 혹은 /따라서/로 읽힌다. 표의 문자를 언어적 기호로 본다면 이런 것들도 언어적 기호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읽는 사회적 방법이 있는 기호는 모두 언어 기호로 보아야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써진 기호 중에서는 오직 표음 문자만을 언어 기호로 보아야 한다.

 한편 이런 문제는 발화(utterance)와 담화(discourse), 텍스트(text)와도 얽혀 있다. 이런 용어 아래에서 언어를 다룰 때는 실제 ‘의사소통’ 상황과, ‘문장 이상’의 단위라는 점을 전제해 왔다. 아마 그 이유는 ‘의사소통’은 정보 전달의 연쇄이고, 최소한의 정보를 담은 단위는 ‘문장’이라고 정의되어 왔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앞의 예에서 본 것처럼 ‘화장실 문에 쓰여 있는’ “男” 혹은 “女”라는 기호는 문장이 아닌데도 무리 없이 정보의 발신과 수용 즉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발화’, ‘담화’ 혹은 ‘텍스트’에서 다루는 언어학적 형식의 규모가 ‘문장 이상’이라는 기존의 입장은 다듬어지거나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男” 혹은 “女”라는 기호가 수영장 탈의실 앞에 쓰여 있다면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될 것이다. 이로부터 저자와는 다르게 의사소통이라는 목적이 달성되는 데 관계하는 세 부분이 추출될 수 있다. “男” 혹은 “女” 같은 표현, 그것이 다르게 해석되는 환경, 다르게 해석되는 과정 이 셋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의해 Widdowson(2004:1장3))에서는 문자이든 소리이든 그 표현(form)을 text라고 보고, 그것이 특정 맥락 안에서 해석이 되는 과정을 discourse로 보고 있다.


1) Laver, John 1994. Principles of Phone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 달무리를 보고 비가 올 것을 아는 것은 ‘달무리’를 해석적으로 이용한 것이고, 이 경우 ‘달무리’라는 현상은 ‘정보알림’의 측면을 지닌 기호라고 볼 수 있다. 발신자의 의도 없이, 수신자의 해석적 이용 때문에 기호가 되는 것을 징후라고 한다. (도구론적 기호학과는 달리 표상적 기호학에서는 징후 대신 지표index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 <기호와 해석>(루디 켈러 지음, 이기숙 옮김, 인간사랑, 2000) 참고.)


3) Widdowson, H. G. 2004, "1. Text and Discourse", Text, Context, Pretext: Critical issues in discourse analysis, Blackwell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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