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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guistics/Keller

언어는 제 3의 현상이다

by 앎의나무 2008. 4. 24.

의미론 공부 모임, 2007년 5월 11일, 쟝

요약정리텍스트 : Rudi Keller(2004년 7월 15일자 전자논문) (form his homepage)

(이 글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학 전공의 의미론 세미나에서 본인이 요약정리했던 글임을 밝혀 둡니다.)

                                                                                                                                                                       


The Natural Language : An example of spontaneous order and its sociocultural evolution (Rudi Keller 저)


 1 서언     2 발달에 대한 이론들

 3 자연과 문화에 생기는 우연한 질서들  4 자연 언어 : 우연한 질서의 진화


1 서언

 19세기 학문의 발발 동기는 발달과 진화라는 현상이었다. 태초의 세계는 18·9세기 당시와 달랐다는 발견은 학자들에게 발달의 비밀을 탐구하게 만들었다. 사회학자들, 지질학자들, 생물학자들 그리고 언어학자들은 각 분야에서 공히 세계의 발달을 연구했다. 지금 우리가 알듯이 각 분야마다 성공의 정도는 달랐지만 말이다. 가장 유명한 결론은 경제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연구와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연구이다. 그렇지만 언어학자들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가령, 인도-유럽어족이 발견되었고, 산스크리트 어, 페르시아 어, 영어, 포루투갈 어의 친족관계도 발견되었다. 또한 음변화 법칙의 발견으로, 언어학자들은 실제로 완전한 원시조어의 부분들을 재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그들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목표인, 은유적으로 말하면, 언어의 탄생과 성장과 죽음의 비밀을 푸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이는 언어학자들이 잘못된 분석 전략을 가지고 있었고, 소위 자연 언어의 정수에 대한 가설이 기본적으로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이 번 천 년대 말의 많은 연구 원리의 발발 동기 중 하나는 우연한 질서에 대한 연구이다. 사회 과학에 있어서 이것은 인류 사회가, 예측이나 계획의 결과가 아니며 거의 예외 없이 개인들의 목적 성취를 위해 의도된 인간 행동의 부수효과(기대되지 않은 효과, 부작용)으로 생겨난, 고도로 지적이고 기능적이고 유익한 사회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언어가 이러한 우연한 질서의 아주 전형적인 예임을 보일 것이다.

 

2 발달에 대한 이론들

 어떤 현상의 역사적 발달에 대한 이론의 공식화를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두 가지 전략 가운데서 선택해야 한다. 이 두 전략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앞서 언급된 두 학자-마르크스와 다윈, 이 둘은 우리와 동시대 사람이다-의 이론을 이용할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발달의 경로에 대한 이론을 디자인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노예-봉건-자본주의-사회주의 사회로 이어지는, 인류 사회의 발달 법칙을 확인했다고 믿었다. 다음은 발달의 원리에 대한 이론을 공식화하려는 것으로, 그 원리들이란 발달은 어떻게 시작되며, 어떻게 생겨나며, 어떻게 항상 변화 중에 있게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이론의 목표는 앞으로의 방향을 예견하거나 발달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이론은 다윈에 의해 상정되었다. 다윈은 생물계의 진화의 원리, 즉 변이와 선택의 상호작용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19세기의 언어학자들은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발달의 경로’ 이론과 관련되었고, 마르크스와 마찬가지 이유로 실패했다. ‘발달의 경로’이론들은 해당 영역이 결정론적일 경우만 적절하다. 달리 말해, 역사 발달 경로 이론들은 역사에 대해 결정론적인 개념을 전제한다. 칼 포퍼(Karl Popper)는 이런 유형의 개념을 “역사주의”(historicism)이라고 불렀다. 19세기의 대다수 언어학자들은 포퍼의 견지에서는 역사주의자들이었다. 아우구스트 슐라이허(August Schleiher)는 19세기 언어학자들 중 가장 우수한 대표적 인물로서, 계획적 제목을 단 책 “언어의 학문으로 검증하는 다윈주의”(Darwinism Tested by the Science of Language)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언어는 자연의(nature) 유기체(organism)이다; 언어는 결코 인간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한정된 법칙에 의해 스스로 흥망한다; 성장하고 죽어서 사라진다. 언어들 역시 우리가 ‘삶’이라는 이름 아래 감싸 안는 현상들에 대한 주제이다. 언어에 대한 학문은 곧 자연에 대한 과학이다.” 언어가 자연의 유기체라 믿지 않는 사람들, 가령 미국의 언어학자인 드와이트 위트니(Dwight Whitney)는 그릇된 대안을 선택했다: 이들은 언어를 인간의 가공물로 간주했는데, ‘언어는 배타적으로 인간 행동의 결과이다’라고 말하며 이 이론을 정당화했다.

 그래서 한 쪽은 언어가 인간행동의 결과이므로 언어는 인공물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다른 쪽은 언어는 인간 의지의 산불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따라서 자연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논쟁의 양편 모두는 서구식 사고의 오랜 전통인 이분법의 감옥에 갇혀 있다: 자연물 VS 인공물, 자연(physei) VS 인위(thesei). 양쪽 모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이 둘이 상호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언어에 대해 말하면, 많은 사회 제도들처럼, 이 둘 모두 진실이다.  언어는 인간 행위의 결과이다. 그러나 인간 의지·의도의 결과는 아니다. 영어, 포루투갈어, 독어 등 우리가 하는 말은, 수많은 세대들을 거쳐 수많은 개인의 의사소통 노력에 대한 의도되지 않은 부수효과이다. 소위 자연 언어는 에스페란토 같은 인공물도 아니고 꿀벌의 “언어”처럼 자연 현상도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표현을 빌면, 이것은 제 3의 현상(phenomenon of the third kind)이다1). 이런 현상들은 인공물처럼 인간 행동의 결과이다; 그러나 자연 현상과 달리 이미 존재하는 인간 계획의 실행은 아니다.

 제 3의 현상처럼 “자연” 언어는 사회적 진화를 따르는 우연한 질서의 전형적인 예로 간주될 수 있다. 언어의 발달은 결정론적 과정이 아니므로, 적절한 이론은 오직 ‘발달의 원리 이론’일 수밖에 없다. 우연한 질서와 사회문화적 진화라는 두 측면은 내재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다음 단락에서 이를 증명할 것이다.


3 자연과 문화에 들어 있는 우연한 질서

 우연한 질서는 사회의 영역에서도 발견되고 생물·무생물의 자연 영역에서도 발견된다. 시장 경제의 가격 결정 체계, 서부 사하라 모래의 변화에 의해 생기는 문양들, 자석에 노출된 쇠부스러기들이 만드는 선들, 그리고 소위 자연 언어가 그 예가 된다. 척보기에 이 보기들은 다소 특이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한 가지 점에서는 공통된다: 우연한 질서, 그것은 특수한 구성 조건 아래에서 개별 요소들에 영향을 주는 어떤 힘을 통해 존재하게 된다. 개별 요소들의 영역을 미시구조라고 부르고 질서 그 자체는 거시구조라고 부른다면 다음과 같은 정의에 다다를 수 있다


 우연한 구조는 특수한 구성 조건 하에, 미시구조적 영향에 기인하여 생긴 거시 체계이고, 그 영향은 거시 체계가 만들어지는 사건에서 목적된 바가 아니다.


 좀 추상적인 정의인 것 같지만, 다음과 같은 예를 보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서부 사하라의 모래 언덕이라는 구조, 곧 거시구조적 체계는 특수한 조건―모래 알갱이의 크기, 습도 등 미시구조적 요소(즉 모래 알갱이)에 영향을 주는 힘(즉, 압도적인 서풍)에 의해 형성된다. 모래 언덕의 구조는 자연 현상이고, 오직 인과적 절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유형의 질서는 사전에 준비된 계획의 실행이 아니므로 우연한 것이다.

 사회적 영역에서의 우연한 질서의 예를 보자. 우리가 잘 아는 예는 교통 체증이다. 도로 운송 영역의 연구자들은 자동차 길에서 매일 일어나는 현상을 “원인 없는 교통 체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제 3의 현상으로써 이 부류의 전형적 특징들을 보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나는 단순하게 변형시킨 모델을 이용하여 이런 교통 체증의 기원을 기술해 보겠다.

 아주 교통량이 많은 길을 자동차들이 약 30m의 간격을 두고 100km/h로 달리고 있고, 순전히 단순함을 위해, 길은 일방 1차선이라고 가정해보라2). 한 운전자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그의 차 속도를 90km/h로 줄인다(이유는 본고의 논의에선 중요치 않다). 이 운전자를운전자A로 부르고 뒷차의 운전자를 운전자B, 그 뒤를 운전자C 등등으로 부를 것이다. 그런데 B는 그녀의 자동차 속도를 얼마나 줄여야할지 모르므로 안전적 여유를 위해 (앞차보다)적게 줄이기보다는 많이 줄일 것이다. 그녀는 차의 속도를 85km/h로 줄인다. C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게 된다. 앞차에 맞춰 속도를 딱 85km/h로 줄이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그는 B가 얼마나 확실히 속도를 줄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되기 위해 그는 필요한 것보다 많이 속도를 줄일 것이다. 그는 80km/h로 속도를 줄인다. 이제 우리는 S의 차부터는 정지해 있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3).

 이것은 단순화한 모델이다. 현실은 훨씬 극적이어서, 한 자동차에서 다음 차로의 선형적 감속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이 예면 될 것이다. S 이후의 교통 체증은 A에서 S에 이르는 자동차 운전자에 의해 특수한 방식에 의해 만들어졌다. 비록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교통 체증을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그들은 교통 체증을 그들의 행동을 통해 만들어냈다. 각 개인은 단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행동에 적절하게 반응했고 그것은 속으로부터 안전을 위한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따른 것이다. 그래서 의도 없이, 심지어는 부지불식간에 이들 각각은 위험한 상황의 탄생에 기여했다. 이를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유명한 말로 표현해 보면, “[사람은] 단지 자신의 이득을 의도하고, 다른 많은 경우처럼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목적을 향상시키게 된다.”(Smith 1776:400). 교통 체증은 의도된 인간 행동의 누적 인과관계의 결과이다. 반금 선보인 유형의 설명은 아담 스미스의 은유를 참조하여 “보이지 않는 손 설명”이라고 불린다.

 원칙적으로, (교통 체증 같은)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우연한 질서는 집합적인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특정한 유사성들에 의해 특징지워진 행동이지만 모이면 어떤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에서 유사성은 운전자 각각이 다음의 격율에 의해 행동했다는 데 있다 : “브레이크를 조금 더 밟는 것이 조금 덜 밟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체증은 안전을 위한 여유분을 가지도록 브레이크를 밟는 행동의 부수적 현상이다. 이는 우연한 사회문화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모래 언덕처럼 단지 인과 관계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도된 과정과 인과 과정의 조합이다: 교통 체증은 의도된 행동들의 인과적 결과이다.


4 자연 언어 : 우연한 질서의 진화

 언어학으로 돌아오자. 자연 언어 역시 수없이 많은 세대에 걸친 수없이 많은 개인들의 의사소통 노력의 부수현상이다. 그러나 언어는 교통 체증처럼 정적인 체계가 아니다4). 언어는 계속해서 변하는 역동적인 체계이다. 사회문화적 영역의 우연한 질서가 정적인지 동적인지는 질서를 만드는 행동들에 적용되는 격율에 의해 결정된다. 설명해 보겠다.

 언어는 영향력을 가지는 수단이다. 가령, 한 사람은 그의 청자가 어떤 것을 믿게 만들거나, 어떤 것을 하게 만들거나 어떤 의견을 취하도록 만들 것이다. 특정한 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로 실체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어와 같은 언어는 배타적으로 수백만의 언어 능력의 개별 예들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의 능력은 개별적인 것(singular)으로 여겨질 수 있다. 추정컨대, 완전히 같은 언어적 기술들의 조합을 처리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화자의 개별적인 능력의 핵심부는 청자의 개별적 능력에 대해 추정하는 능력이다. 어떤 화자라도 항상 자신의 개별적인 능력으로부터 의사소통하고 있는 목적 중 하나는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되는 것은 결코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보통 우리는 예의바르고, 지적이고, 매력적이고, 유식하고 등등 좋게 여겨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사회적 지위, 지역적 출신, 정치적 신념을 보이기를 원한다. 이 모든 요소들은, 구성 조건들에 대한 평가 그리고 청자의 능력과 더불어 화자가 언어적 수단을 고르는 데 영향을 준다. 화자들은 항상 최고의 궁극적 이득을 약속하는 언어적 수단들을 고르도록 이끌린다. 이런 의미에서 매일의 의사소통 행위는 작은 사회적 경험이다. 그런 선택은 완전히 성공적일 수도, 부분적으로만 성공적일 수도, 때로는 완전히 싪일 수도 있다. 의사소통은 모험스럽다. 어떤 화자의 언어 능력은 곧 성공적 의사소통에 관여하는 그의 가정들이다. 즉 실패와 성공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화자의 가정들이다. 현실적으로 이는 사실이다.

 간단한 예를 보자. 헤어질 때, 당신은 가능한 몇몇의 변이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good-bye, bye-bye, see you, see you later, take care farewell 등의 다양한 교체형들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당신이 고른 표현의 의사소통 상의 목적은 아마도 거리감, 애정, 교육, 출신, 권력 등등을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화자는 자신의 목적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정확하게 고른다. 성공은 화자의 가정들을 옳은 것으로 확신시켜준다; 실패는 지적인 실험자가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

 많은 개인들이 같거나 유사한 격율에 따라 선택을 해나간다면, 매일의 의사소통 행동에서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과정은 거시구조적 효과를 낳게된다. 만약 그렇다면, 누적효과가 발생한다. 교통 체증의 예에서는 “브레이크를 조금 더 밟는 것이 조금 덜 밟는 것보다 낫다.”가 격율이고 이는 특정 상황 아래에서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 어떤 격율들이 언어 구조의 탄생에 기여할까? 우리는 두 가지 유형의 격율을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언어적인 동질성과 안정성을 이끄는 격율들이다. 나는 이를 정적 격율(static maxims)이라고 부른다. 변화를 이끄는 격율은 동적 격율(dynamic maxims)이라고 부르겠다.


 정적 격율의 핵심 : 대화 상대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라.


이해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상대방의 기대에 따라 정통적 방식과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새로운 것도 덜 기대되게 마련이다.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형태는 오해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언정과 동질성을 낳는 다른 격율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지 않게(튀지 않게) 이야기하라.

 당신이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식되게 이야기하라.


이 둘은 모두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하라”라는 격율의 변이형들이다. 다음은 동적 격율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당신이 주목받게 이야기하라.

 특별히 공손하고, 매력적이고 ,추켜세워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라.

 재밌고 즐겁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라.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라.


 일반적 환경에서는 우리는 우리의 언어적 수단들을 정확하게 하나의 격율에 따라 고르지는 않는다. 이야기할 때 우리는 一石多鳥를 시도한다: 우리는 주의를 끌고, 이해되고, 힘을 아끼고, 공손하려는 등등을 한꺼번에 시도한다. 의사소통은 일종의 복합적 동기를 가진 게임이다. 언어변화는 화자가 자신에게 기대되는 이득에 따라 의사소통의 방식을 선택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약 많은 개인들이 같거나 유사한 전략에 근거하여 선택을 한다면, 나중에는 변화로 인정될, 의도하지 않은 누적 효과가 나타난다. 정적 격율과 동적 격율의 상호작용은 언제나 충분한 안정성과 동질성으르 보장하는 한편, 끊임없는 언어변화가 나타나게 한다. 언어 발달은 진화 과정의 예로 간주되기 위해 충족되어야할 4 가지 조건들은 충족한다.


 진화 과정은 끝이 없다.

 진화는 누적적 과정이다.

 진화 과정의 역학은 변이와 선택의 상호 작용에 기초한다.

 진화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적응적이다. 즉, 언어 발생·변화는 공동 학습의 예이다.


사회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의 결정적 차이는 사회문화적 진화에서 변이의 출현이 임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변이는 예상되는 선택을 기대하는 과정에서 개인들의 상호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다. Stephen Toulmin이 말했듯, 변이와 선택은 연결되어 있다. 생물학적 진화에서 이 둘은 별개의 과정이다. 생물학적 진화와 달리 사회문화적 진화는 실패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공에서도 배우는 학습과정이다.



1) 197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를 염두에 둔 표현인 듯하다.


2) 이 속도에 이 정도 차간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교통량이 많은 것이다.


3) 실제로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는, 어느 한 지점에서의 작은 사고나 상당히 먼 곳의 엄청난 교통 체증으로 이어진다.


4) 교통 체증은 속도가 0이 되면 그 이상의 변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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