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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izing

삶의 기쁨, 오래된 미래 7장 중-

by 앎의나무 2006.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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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라다크 사람들은 확장된, 포괄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우리처럼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기보호막을 쳐놓고 그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가 자부심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자존심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들의 자존심은 의문의 여지없이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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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인 취급을 받았다. 그로서는 분명히 평생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굽신거리는 태도는 전혀 없었고 친구에게 하듯이 아부하는 태도도 없이 위엄을 잃지 않고 그저 요청받은 대로 행동을 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아주 대범했기 때문에 자신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라다크 사람처럼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된 사람들을 만난 일이 없다. 그 이유는 물론 복합적이며, 전체적인 삶의 방식과 세계관에서 나온다. 그러나 나는 그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신이 훨씬 큰 어떤 것의 한 부분이며, 다른 사람들과 또 자신의 주위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라고 확신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 속해 있다. 그들은 나날의 친밀한 접촉을 통해서, 변화하는 계절, 필요, 제약들을 포함한 그들의 가까운 환경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그 삶터에 결속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살아 있는 맥락을 의식하고 있다. 별들과 해와 달의 움직임은 그들의 나날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친숙한 리듬이다.


그와 똑같은 것으로, 라다크 사람의 보다 큰 자아개념은 사람들 사이의 긴밀한 유대와 관계에 있다. 아까 말한 결혼식에서 나는 사람들이 웃고 농담을 하고 나서는 조용히 앉아서 차를 마시며 말을 주고받을 필요없이 오랫동안 각자 생각에 잠겨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많은 경험을 ― 슬픔과 기쁨을 ― 공유해왔다. 그들의 삶은 중요한 전환기가 되는 의식들에서 서로를 지지해주며, 함께 일을 해왔다. 나는 갑자기 그들의 인간관계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라다크 문화를 체험하기 전에, 나는 집을 떠나는 일은 성장의 일부이고 성인이 되는 데 필수적인 단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대가족과 친밀한 작은 공동체야말로 성숙하고 균형잡힌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보다 나은 기초가 된다고 믿는다.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사적 지지의 그물을 제공하면서,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을 권장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틀 안에서 개인들은 아주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안정감을 얻는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산업사회의 우리들보다 정서적으로 덜 의존적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랑과 우정이 있지만, 그것은 격렬하거나 구속을 주는 것이 아니고,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일년 동안 어디에 가 있다가 돌아온 열여덟살짜리 아들을 만나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다. 그녀는 아들이 보고 싶지 않았던 만큼 놀랍도록 평정해 보였다. 나는 이런 행동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겨울 동안 떠나 있다가 되돌아왔을 때 라다크 친구들이 내게 보인 태도가 이상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좋아할 선물을 가지고 왔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고 선물에 기뻐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내가 아무데도 가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들은 선물에 대해 고마워했지만 내가 바란 식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몹시 흥분하고 우리들의 특별한 우정을 확인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실망했다. 내가 여섯달 동안 떠나 있었건 단 후를 떠나 있었건 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똑같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상황에든 적응하는 능력, 상황에 상관없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한 장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라다크 친구들의 편안하고 대범한 태도를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아무데도 가지 않은 것처럼 대해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아무것에도 우리처럼 집착하지 않는 것 같다. ··· 친구가 떠나는 것을 보거나 어떤 값진 것을 잃어버리면 불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굉장히 불행하지는 않을 수 있다.


··· 그러나 결국 그들의 만족과 마음의 평화는 그런 외부의 상황에 좌우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은 내면으로부터 온다. 라다크 사람들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들 주위와의 관계는 내면의 평정과 만족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종교는 사람이 건강하고 따뜻하고 안락하고 배부르더라고 그가 ‘무지’한 한 행복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만족감은 자신이 삶의 흐름의 일부임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긴장을 풀고 그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데서 온다. 당신이 먼 길을 막 떠나려 하는데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비참한 기분이 될 게 뭐 있는가? 아마도 더 좋을 것은 없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의 태도는 그렇다고 “불행할 게 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