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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나무 2005. 12. 8. 02:23

후폭풍을 보며

때아닌 후폭풍을 지난 일주일간 지켜보게 되었다. 지난 11월 22일 PD수첩의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방영 이후 네티즌과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다수의 언론은 MBC와 PD수첩을 매국노라는 표현을 쓰면서 질책을 가했다. 특히 일부 네티즌은 PD수첩의 PD 가족들 사진까지 올리겠다고 하거나, 또 그 가족들까지 표적을 삼겠다는 실로 섬뜩한 표현을 서슴없이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하다. 지난, 11월 26일에는 MBC 사옥 앞에서 황교수 팬클럽 및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회원 130여명이 촛불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 자리에서 가수 강원래씨는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렇게 무작정 비판을 가하는 것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생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는 발언을 하였다고도 한다.

소수의 사람들은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뒤돌아보지 않은 연구 진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PD수첩의 방영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PD수첩의 방영에 대해,1) 평소에 PD수첩은 참 좋은 비판을 했으나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2) PD수첩의 방영 자체가 국익에 해를 줄 수 있는 매국노적 방영이었다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하였으며 특히 후자의 경우, 윤리적 문제가 얼마나 큰 문제이기에 그리 문제를 삼는가라는 의견부터 외국 언론이 할만한 것을 우리 나라 언론이 자행했다는 의견부터 다양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 연구의 국민적 지지는 국익 문제인가? 난치병치료 문제인가?

문득 황우석 교수 연구 성과에 대한 지난 2005년 5월 이후의 국민적 지지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쌓였었다. 국익 문제인지, 아니면 난치병 완치에 대한 문제인지 말이다. 특히 지난 26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및 가수 강원래씨 같은 경우 난치병치료 문제에 대해서 분명 이 연구만이 희망이기 때문에 그들의 절박성을 감안하지 안되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분명 우리들의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90년대 말 "복제양 돌리"에 대해서 기사가 나왔을 때도 국내에서 난치병 치료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는가? 당시 기사들을 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란, 그리고 복제양 돌리의 사망을 크게 보도하며 오히려 그 경계에 대해 늦추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에는 인간 복제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언론에서 보도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상황은 2005년 5월 이후에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윤리적 논란은 그저 황우석 교수 연구의 발목을 잡는 문제로 치부되고 있고, 한 언론 사설에서는 이러한 문제제기로 인해 연구를 가로막는 것은 근본주의자와 시샘을 내는 사람들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그러나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PD수첩에 대한 방영의 비판은 찬성할 수도 없고, 오히려 그 본질을 벗어난 상황 판단 및 해결 방법에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국익이고 그 국익을 바라는 우리들은 무엇때문에 윤리 문제를 제껴두고라도 그 국익을 바라는가?

우리 사회의 내셔널리즘(아..진짜 공감한다 /마담)

지난 90년대 우리 사회에서 베스트셀러로 기억이 남는 소설과 만화가 있다. 김진명씨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이현세씨의 '남벌'이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필독서로 꼽히는 두 작품은 한국의 힘을 키워서(하나는 핵폭탄의 무장을 통해, 하나는 전자펄스를 통한 전자방어망 무력 후 침투를 통해) 일본을 침공한다는 주제를 잡고 있다. 특히, 두 작품 모두 북한과의 동맹을 통한 침공이라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내셔널리즘, 즉 민족주의로 해석되는 우리 사회의 열광은 이 두 작품을 아무런 비판없이 열광토록 만든 산물이다. 바로 이 보수적 민족주의가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에서의 내셔널리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의 개방화, 세계화를 통해 나타나는 모습은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국가주의, 국민주의 등을 모두 포괄하는 내셔널리즘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야 할 듯 하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우리 사회의 민족과 국가와 국민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내셔널리즘으로 총칭한다.

내셔널리즘의 극한을 보여준 사례로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때 붉은 악마의 모습이었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내셔널리즘을 통해 나타나는 가장 국가적인 스포츠이겠지만, 이 속에서 나타나는 내셔널리즘의 단결된 모습은 우리도 하나되면 이렇게 대단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준 반면에, 또 그 단결의 모습이 만에 하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잘못 쓰여진다면 무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동시에느끼게 되었다. 그당시에도 언론에서는 붉은 악마의 단결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미 '문화과학'이나 유럽의 기자는붉은악마 형성이 내셔널리즘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도 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애국자는 있어도 축구팬은 별로 없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가게 된다.

역사에서 가정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고 하지만, 가끔 "우리가 만약 미국이라면"의 가정을개인적으로 해보곤 한다. 그렇게 한국 사회가 학문적으로,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지향하는 미국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핵폭탄을 소유하고, 세계경찰국가가 되고, 한류가 엄청나게 급부상해서 헐리우드 문화 뺨치는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내셔널리즘을 자제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남벌'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스토리를 스스로 양산해내지는 않을까? 붉은 악마의 기적이 결집을 가져오되, 그 표출 방향은 오히려 윤리의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국가는 이라크 전쟁과 같은 일을 자행하고 국민들은 지금 미국 사회의 국민과 마찬가지로 전쟁에 대해 별 문제의식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분명 우리 사회는 내셔널리즘이 만연한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우석 교수 연구에 비판을 했던 PD수첩은 유례없는 네티즌들의 폭격을 받고 있다. 국익(국가, 국민, 민족의 이익)의 엄청난 성과가 있는데 왜 발목을 잡느냐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 시대의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논리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PD수첩이 아니었어도 이미 일부는 밝혀졌고그 후 황우석 교수 기자회견으로 밝혔질 수 밖에 없었던 난자매매와 연구원 난자의 사용에 대한 문제는 그것이 공중파에서 방영된 것 때문에 그 화살이 집중되어 버렸다. 특히, PD수첩을 다시 한 번 보면 알겠지만 내용 전체에 황우석 교수 연구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없었으며 국익에서의 윤리문제는 오히려 한번은 집고 넘어야할 문제라는 조심스러운 견해가 수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네티즌과 다른 언론들의 비난은 가혹했다. 한겨레신문만이 토요일자 신문에 '일그러진 애국주의'를 문제 삼은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노동중독의 사회, 자본과 성과라는 환상을 품다

내셔널리즘이 PD수첩 방영에 대한 분노의 대중적인 표출의 기반이었다면, 각 개개인의 황우석 교수 지지는 어떤 이유때문일까? 이 두 가지의 문제 출발은 분명 구분지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만약 내셔널리즘이 아무리 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그 내셔널리즘을 작동시킬 기제가 없었다면 이렇게 여론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 기제가 아무리 각 개개인을 작용하고 있다할지라도 내셔널리즘이 없었다면 그것은 여론의 응집성이 약화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 연구의 지지는 분명 앞서 말한대로 국익에 있다. 그 국익이라는 것은 생명과학연구를 통한 국가적 이익에 다름아니다. 줄기세포 성과에 대한 2004년 11월 한국경제신문의 사설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시장만 앞으로 한해 수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될 정도다. 배아복제 금지를 둘러싼 논란도 겉으로는 생명윤리를 내세우고 있지만,실제로는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만 하더도 공식적으로 배아복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많은 연구 기 관들이 복제연구에 나서고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한국경제 11월 26일자 신문 사설 중)

자본과 성과만을 중시하는 사회인 노동중독 사회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황우석 교수 연구는 이미 자본과 성과의 신화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가졌다. 여기에서 말하는 노동중독이란 무엇인가? 강수돌 교수에 따르면 노동중독이란 워커홀릭과는 다른 개념으로 워커홀릭은 일만을 즐기는 나머지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일에만 몰두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개념이지만, 노동중독은 사람들의 삶에서 노동이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기 노동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병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또 갈수록 더 많은 노동이나 더 높은 성과를 내야만 만족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노동을 중단할 때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병적 상황을 가리킨다.

한국사회의 경우에도, 직장인에게 여가생활을 선호하게 만들기 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것을 더욱 가치있게 판단되도록 만들기 때문에 여가활동 자체를 죄악시 여기고, 축제와 관광 등의 활동 자체를 쓸모없는 일이라 여기는 것도 이의 발로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대통령이 정국구상을 위해 휴가를 간다고 하면 '국민들은 힘들게 일하는데 대통령은 놀려고 한다'는 비판, 주5일 근무제를 주장하는 노동계에 대해 '일하기 싫으니까 근로시간만 줄이려는 저 근로자들을 다 짤라버려야 한다'는 섬뜩한 이야기 또한 바로 그 중심에는 노동중독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황우석 교수 연구는 바로 일잘하고 성실하고 능력이 뛰어난 연구팀의 성과물이다. 이 성과물은 엄청난 자본의 혜택이 예상되기도 한다. 어떻게보면 연구로 인한 국익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선'으로 해석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선'에 딴지거는 PD수첩은 그렇기 때문에 악마와 같다는 말을 서슴치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황우석 교수 연구에 대해 황우석 교수 사과 기자회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매일 새벽 6시 5분에 모든 연구원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와서 조회를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또 그것을 본 언론과 네티즌들이 존경심을 보낼 때면 너무 앞만 보고 가는 모습이 경제개발논리와 닮았다는 씁슬함을 들게 한다. 그 성과주의는 결국 윤리의 문제를 부차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지 않나라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이제는 차분한 길을 걷자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 지속되어야 하고, 국가적 후원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PD수첩 방영진도 분명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들을 포함한 연구에 대한 비판자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연구에 시샘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국노도 아니다. 다만 윤리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노동중독 사회를 경계한 것이고, 지금 일고 있는 전국적인 MBC 매도 현상은 내셔널리즘의 극단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결코 그들이 그렇게도 이야기하는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이라는 사회는 (이미 외신에 나간 것처럼) 윤리 문제에 대해 크게 생각치 않는 나라라는 오명만을 가져올 뿐이다. 그렇다면 왜 방영을 했느냐고 또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방영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네이쳐지 또는 정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성과 후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오히려 국가적인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이미 PD수첩은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으로 모든 광고가 취소당했다. 이제는 언론이 자기의 주장을 피지 못하고 그저 여론만을 따라가는 현상이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든다. 이제는 차분한 길을 걷자. 분명 난자매매에 대한 문제, 그리고 연구원 난자사용에 대한 문제에서는 의학계 뿐만 아니라다른 학문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분명 인지하고 있는 우려할만한 일이다. 그 비판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은 다양한 사회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PD수첩 방영 후 논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마지막으로 PD수첩 방영 이후 각 언론의 기사 제목과 PD수첩 게시판의 가족 사진을 올리는 것과 관련, 한 네티즌이 자제를 해달라고 했을 때의 반응을 보기 바란다.과연 우리사회는 몇시에 와있는가?

<한 포탈사이트의 기사 제목 모음>

<피디수첩 게시판의 한 네티즌의 글>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kisa/section-002007000/2005/11/002007000200511281329264.html